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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39) 치산녹화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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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10년 강진 초당림을 찾은 고건 전 총리(왼쪽부터), 손수익 전 교통부 장관, 김기운 초당대 이사장, 김재완 전 광주시장. 가운데 백합나무가 서 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1973년 3월 10일 내무부는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10년간 전국의 100만㏊ 넓이 산지에 나무 21억3200만 그루를 심고 화전민 20만3000가구를 이주시킨다는 유례없는 대규모 조림계획이었다.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10년 동안 고생을 해서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합시다.” 1973년 4월 5일 경기 양주군 백봉산(지금의 남양주시에 위치)에서 열린 식목일 기념 나무심기 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최고 통치권자인 박 대통령의 국토 조림에 대한 집념, 새마을운동에서 나온 국민적 에너지, 치밀한 행정력. 치산녹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 가지가 통합적 시스템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1년에 3억 그루 안팎의 나무를 심었다. 대대적인 국민 식수 운동으로 이어졌다. 양묘(묘목 키우기)와 조림을 마을 소득으로 연결시킨 전략이 주효했다. 묘목은 각 마을 안에서 키웠고 묘목 값은 정부가 치렀다. 묘목을 마을의 앞산과 뒷산에 심는 일은 다시 주민들 몫이었다. 마을 산을 푸르게 가꾸면서 수입도 생긴다고 하니 새마을지도자들이 앞장섰다. 조림하는 주체별로 기관(機關)조림, 군(軍)조림, 산주(山主)조림, 마을조림을 추진했는데 마을조림의 비중이 가장 컸다.

 행정 장악력과 동원력을 극대화했던 당시 김현옥 내무부 장관과 손수익 산림청장의 리더십도 성공의 주요인이었다. 나무가 제대로 뿌리내렸는지 검사(활착 검사)하는 일은 공무원이 맡았다. 매년 2억5000만~3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데 산림청 공무원 인력만으로는 안 됐다. 전국 공무원을 총동원했다. 또 지역별로 교차해서 검목(檢木)을 했다. 경기도에 심은 나무는 강원도청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나무 하나하나를 검사하도록 했다. 각 시·도와 시·군의 산림국과 산림과를 이때 새로 만들었다.

 나는 치산녹화계획을 수립했을 뿐이다. 현장에서 지휘하고 실천한 사람은 손수익 산림청장이었다. 한 해 10만㏊가 넘는 산지에 3000~4000개 마을이 나서 나무를 심는 일은 손 청장이 이끄는 산림청의 임업 기술력이 있어 가능했다. 1970년대 후반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 볼 수 있었던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란 표지판도 손 청장의 작품이었다.

 물론 모든 정책에 부작용은 있다. 치산녹화 계획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산통제 규정과 연료 대책이 문제가 됐다. 연탄이 농촌 전역에 보급되기 전이다. 땔감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농민들의 반발이 컸다. 산에서 나물이나 약초 등을 캐서 사는 사람의 생계 문제도 있었다. 경찰이 맡았던 입산 단속은 마을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그리고 아카시아 연료림을 세 배로 늘려 조림했다.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의 성과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공식 보고서에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 최단기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모범국가”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국민조림, 속성조림엔 성공했다. 하지만 치산녹화의 세 가지 원칙 중 마지막 하나인 경제조림은 아직 미완이다. 1차 치산녹화 계획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토질에 맞는 경제수종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

 김기운 초당대 이사장 겸 백제약품 회장은 1970년대부터 사재를 털어 전남 강진군에 1000㏊ 규모의 ‘초당림’을 조성했다. 초당림에서 성공한 외래수종인 백합나무를 나라에서 경제수종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한반도 토종 경제수종은 언제쯤 육종할 것인가. 한반도 북쪽의 황폐산지를 우리 경험을 살려 녹화할 때 10대 속성수종으로 무엇을 정할 것인가. 토양 개량과 연료림을 겸하는 북한형 아까시나무 수종으로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나.’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이경준 교수가 아까시나무 5개 수종을 평양 순안공항 주변 지역에 심은 뒤 그 생육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요즘도 기후변화센터에서 윤여창 교수, 손요환 교수, 이우균 교수 등과 함께 ‘북한 나무심기’ 계획을 다듬고 있다. ‘한반도의 녹화(그린 코리아)’ 완성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닌가.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 손수익

손수익=81세.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전남 나주와 경기 파주·부천의 군수를 지냈다. 내무부 지방국장을 거쳐 경기도 도지사, 산림청장, 충청남도 도지사,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다. 81~83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83~86년 교통부 장관으로 일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94년 ‘장흥학당’을 열었다. 여러 분야 강사를 초청해 연찬회를 여는 일종의 공부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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