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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화 교수와 떠나는 천안이야기 여행 ⑧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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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 동상.

지난호까지 천안지역의 아름다운 산과 산사를 둘러봤다. ‘천안에도 명산이 많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천안은 빼어난 산보다 호국충절의 고장으로 더욱 유명하다. 유관순 열사부터 홍대용 선생까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번호에서는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와 진주성 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의 유허지를 둘러보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키워보자.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는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에 있다. 여기에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 봉화탑, 동상, 영정, 초혼묘, 추모각 등 관련 유적이 있다.

천안시는 유관순열사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969년부터 유적지를 조성해 1972년 추모각을 건립하고 매년 열사의 순국일에 맞춰 추모제 행사를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거행해오고 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열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4월 1일에 개관했다. 이곳에는 수형자 기록표, 호적등본, 재판기록문, 사진 등 관련 전시물이 전시돼 있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6일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화학당 재학 중에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해 1919년 4월 1일 3000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공주감옥에 수감됐다. 1919년 8월,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뒤 일제의 악독한 고문에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에 순국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비폭력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만세운동이다.

열사는 이 원칙을 지키며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순국한 3·1운동 정신의 상징이자 겨레의 꽃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초혼묘 가는 길엔 학생들의 시비가 열사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비바람에 지워져 글씨가 잘 보이지 않지만 시 한 수 소개한다.

그대

꺽어 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곳에 우뚝 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 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통일의 배꽃으로 피어나소서

-이화여고 김희정 짓고 김영기 씀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약 1.3㎞를 가면 병천면 용두리에 생가지가 있다. 1962년 3월 1일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고 열사의 애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1991년 옛 집터에 생가를 복원 정비했다. 생가로 들어서니 ‘ㄱ’자 초가에서 열사가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생가 옆에는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다. 매봉교회 지하에는 열사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또 백석대학교 유관순 연구소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자 유관순 이야기를 출간하고 천안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유관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에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유허지가 있다.

◆김시민 장군 유허지

충무공 김시민 장군 유허지는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에 있다. 임진왜란 중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은 당시 진주 목사였다. 그는 진주성을 지키는 3800여 명의 군사로 3만여 대군의 왜군을 상대로 7일 간의 격전 끝에 적을 격퇴시킨 명장이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은 전투 중에 이마에 적의 총탄을 맞고 치료하던 중 서거했다. 당시 나이는 39세였다.

김시민 장군은 조선 명종 때 충청도 목천현 백촌리 곧 지금의 병천면 가전리에서 목천현 관리였던 김충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김충갑은 호를 구암이라 했는데 이것은 마을 앞에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김시민 장군의 생가지에는 지금 유허비와 구암이 있다. 유허비는 1988년 김시민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했는데 높이가 약 2m이다. 자연석 전면에 충무공 김시민 장군 사사처의 비명이 새겨져 있다.

사사처란 김시민이 9살의 어린 나이에 활을 쏘아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에서 생긴 장소이다. 그의 상무정신과 용맹함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구암 뒷면 에는 김씨세거 백전동천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정리=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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