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말부터 자원개발회사 CNK인터내셔널의 주가가 치솟았다. 이상 거래 징후를 포착한 한국거래소 조사팀과 금융감독원이 거래 내역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최고가에 이른 2011년 6~8월, 이 회사 오덕균 회장은 보유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 팔았다. 심증을 굳힌 조사팀은 넉 달간 증거 자료를 수집해 2012년 1월 초 증권선물위원회에 결과를 통보했다. 증선위가 회의를 열어 오 회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하기까지 다시 2주가 흘렀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수사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낌새를 챈 오 회장이 이미 카메룬으로 출국해버렸고, 주가 조작이 이뤄진 지 1년이 지나 상당수 증거가 인멸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전화 등 통신 내역의 추적은 1년까지만 가능하고 삭제된 e메일 등은 복구할 수도 없다. 검찰은 1년 넘게 조사를 벌인 끝에 지난달 5명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결국 ‘미완의 수사’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 조작 범죄의 엄단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금감원 직원 등에게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금융위원회·금감원·한국거래소 등은 최근 청와대에서 실무자급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사경은 전문성이 필요한 특정 분야에서 검사를 보조해 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이런 안이 검토되는 건 CNK의 사례처럼 주가 조작 사건들이 검찰로 오기까지 보통 1년 넘게 걸려 증거 확보를 위한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 조작 사건이 검찰에 고발되기까지는 한국거래소(이상 징후 포착 및 심리)-금감원(관계자들 조사)-증선위(고발 결정)를 거친다. 짧아도 1년, 길면 2년을 넘긴다. 그동안 피의자들끼리 말을 맞추거나 증거를 없애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처음 징후가 포착됐을 때부터 압수수색이나 출국금지·체포·구속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이 처음 나온 얘기는 아니다. 2004년 증권시장을 감독하는 공무원 6명을 특사경으로 지명했지만 활동 없이 1년 후 자격을 반납했다. 금융위는 실제 자본시장 감독 실무를 하지는 않고, 금감원 직원의 경우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특사경이 되려면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금감원 직원들은 월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또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특사경 권한을 받을 경우 조사 과정부터 검찰의 감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금감원 직원에게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방향이 잡힌 것이 없다”며 “법률 개정 등 살펴봐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법무부에서 너무 앞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대신 자체적으로 ‘과징금’을 부여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검찰과 금융위 등에선 주가 조작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전담 조사기구 신설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델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저축은행 합동수사반 같은 한시 조직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검찰·거래소·금감위·금감원 직원 등을 한 조직에 모아 조사부터 기소까지 완결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안도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일부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이가영·심새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