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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갑자기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40대 전업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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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40대 초반 전업 주부입니다. 헬스 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중학교 2학년 아들한테 문자가 왔더군요. 엄마한테 무조건 반항만 하던 사춘기 아들이 ‘엄마 어디 있어. 보고 싶어’라고 보낸 거예요. 처음엔 웬일로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하나 싶어 기뻤다가 금세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슨 일 있나, 학교에서 사고 쳤나 싶었죠. 게다가 아이가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저한테 꼭 안기는 거예요. 이건 사고 백프로라는 생각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하더군요. 여러 번 다그쳐 물은 후에야 아들 하는 말이 ‘엄마 전쟁 나면 어떡하지’ 그러는 거예요. ‘쓸데없는 걱정 다 하네, 엄마가 꼭 지켜 줄 테니 걱정 마’ 하며 꼭 안아 주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덕분에 아들놈이랑 오랜만에 모자의 정을 포근하게 느끼는 일도 다 있네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특별히 전쟁 걱정이 들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데 말이죠. 잠 드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리고 간신히 잠이 들어도 밤새 여러 번 깨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몸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제가 요즘 왜 이러는 걸까요.

A 갑작스러운 불면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불면을 얘기하기 전에 잠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하는 것일까요. 조물주가 기술이 부족해 24시간 작동하는 뇌를 만들 수 없던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조물주는 잠을 잘 자야만 개운하게 깨어 있을 수 있도록 우리 인간의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가끔 영화를 보면 고문의 한 방법으로 강렬한 빛을 계속 쏘아 잠을 못 자게 만든 후 원하는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만 봐도 잠을 못 자는 게 얼마만큼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입장에서 볼 때 자는 시간은 아깝습니다. 하지만 숙면을 취할 수 없다면 그나마 깨어 있는 인생의 유한한 시간마저 잠든 것처럼 멍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미국 통계를 보면 불면증으로 인한 의료 비용이 한 해 10조원을 넘긴다고 하니 현대인의 불면증은 개인에게서 삶의 경제적, 그리고 심리적 효율성을 뺏고 있는 셈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잠을 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면 황당하신가요.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뇌가 있는 힘을 다해 깨어 있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마치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생존을 위해, 그러니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것처럼 뇌가 과잉으로 각성된 상태라는 겁니다. 원래 우리 뇌는 살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꾸로 뇌가 불면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는 아이러니, 그게 바로 현대인의 불면증입니다.

 불면증은 불안 시그널(신호)에 대한 반응입니다. 불안은 생존의 위협에 대한 경고 알람입니다. 생존에 대한 불안이 느껴지기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죠.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우리 뇌의 감성 시스템이 주변을 평화 상태로 인식하면 뇌는 오프 상태가 되면서 수면이란 휴식에 들어갑니다. 과거보다 크게 늘고 있는 불면의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류는 지금껏 생존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뛰었건만 불안감은 우리 마음속에서 커져만 가고 있나 봅니다.

 안보 불감증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감증은 정말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회피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불안의 자극이 너무 커서 이성적으로 찍어 누르고 있다는 걸 말합니다. 무뎌진 게 아니라 극도의 불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잊고 산다는 이야기죠. 안보 불감증은 불안이 꺼진 것이 아닌 극도의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한 이성의 마지막 방어 기제입니다. 그러나 감성 시스템의 불안을 이성의 방어기제로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불면입니다. 불안해 죽겠는데 태연한 척하니 뇌가 잠을 재우지 않는 것입니다. 감성은 직접적인 언어를 쓰지 못하기에 생리 현상으로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이죠. ‘지금 잠잘때가 아니야’라면서요.

 북에서 핵을 부르짖으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으로 은행·방송국 등 핵심 공공 서비스의 전산망이 망가지니 이런 상황에서도 불안하지 않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일 것입니다. 사연 주신 주부의 중학생 아들처럼 감성에 솔직하게 반응해 불안해하지 않고 이성의 힘으로 불안을 통제하니 결국 불면이란 불안 증상을 통해 감성 시스템의 공포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의 공포는 엄마의 모성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엄마의 내재된 불안은 더 크게 증폭됩니다. 모성애란 인류 생존의 근원적 에너지라서 자녀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면 엄마의 생존 관련 알람 시스템은 최고조로 예민하게 됩니다. 엄마의 뇌가 이미 전시 상태로 접어든 겁니다. 자녀를 전쟁 상황에서 지키기 위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 전쟁은 없으나 뇌는 심리적으로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 피로는 없으나 심리적 피로는 전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불면증은 다루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가끔 이혼 사유가 될 정도입니다. 한 부부가 제 클리닉을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잠을 전혀 이룰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이렇게 불면의 고통을 말하는데 남편이 끼어듭니다. ‘어제도 코 골며 잘 자던데 무슨 불면증이냐’는 겁니다. 아내는 섭섭하고 분합니다. 이렇게 이해심 없는 남자랑 더 이상 못 살겠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사실 두 사람 말이 다 맞습니다. 아내는 분명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잠은 못 잤죠. 무슨 말이냐고요. 잠은 깊이에 따라 4단계가 있습니다. 불안은 깊은 수면인 3, 4단계 잠을 앗아 갑니다. 그러니 숙면으로 일상의 피로를 회복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런 불안 사회에서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면증이 있다고 해서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보다 더 발달한 감성 시스템과 생존 알람을 가지고 있기에 어찌 보면 진화한 종(種)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무딘 것이 결코 경쟁력이나 자랑은 아니지요. 섬세함이 진화한 결과로 생긴 부작용일 뿐입니다.

 불면증 치료는 도(道)의 영역입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편히 먹어’ ‘걱정할 거 뭐 있어’와 같은 이성이 제공하는 상식으로는 불면을 악화시키기만 합니다. ‘오늘 난 잠을 자지 않겠어, 나의 소중한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낼 거야’ 같은 역설적 접근이 오히려 불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잠이 오지 않는데 20 분 이상 잠자리에 누워 계시지 마세요. 잠은 평화 상태에 오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입니다. 잠과 싸움을 벌이게 되면 안식의 잠자리가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루에 나가 책을 읽으세요. 자극적인 TV 보다 음악과 독서가 이완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잠이 오려고 하면 그때 잠자리에 가서 누우세요. 만약 지금의 잠자리가 이미 심리적 전쟁터로 황폐화해 있다면 마루나 다른 방에 잠자리를 만드세요.

 불면은 의지가 약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섬세함과 생존의 불안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에 답이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존을 위한 생존에는 불안만 있을 뿐입니다. 가치를 위한 생존에 감성은 다시 여유를 갖습니다. 그런 면에서 불면이란 ‘더 많이 더 빨리’ 같은 생존불안에 중독된 우리에게 우리 마음이 가치를 위해 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 여겨지네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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