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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검사·기자가 힘을 합치면 완전범죄가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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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업인·검사·기자가 힘을 합치면 실제로 완전범죄도 가능할 것 같다.”

 지인 K는 드라마 ‘돈의 화신’을 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에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권력 견제장치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K는 드라마를 강추하며 덧붙였다. “살인마 지세광이 정의로운 검사의 표상으로 칭송받는 일이 드라마에서만 일어날까? 인사 청문회까지 가서야 비도덕적 실체가 드러나는 지도층 인사들이 저리 많은데….”

 그리하여 이 드라마를 3주째 보고 있다. 드라마의 상상력은 맹랑하다. 기업인·검사·기자 등 5명이 거부(巨富)의 살인사건에 가담해 그의 아내를 살인범으로 몰고, 그의 아들도 살해하고 재산을 빼돌린다. 그리고 그들은 정의로운 검사와 기자, 성공한 기업인으로 15년 이상을 무사히 산다. 그러다 죽인 줄 알았던 거부의 아들이 살아서 복수를 벌이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지난 주말 내용은 엽기적이었다. ‘정의로운’ 검사가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기 위해 그의 혈액을 빼돌려 증거물에 묻혀놓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 해당 기관들의 협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당치 않은 상상력’이라고 일갈하면서도, 나는 왜 그 장면에 공포를 느꼈을까.

 “정말 기업인·검사·기자가 힘을 합치면 완전범죄가 가능할까?” 드라마의 뒤끝은 꿈으로 이어져 잠결에 K의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런데 대답은 3주 전만큼 자신만만하지 않았다. 잠에서 깬 뒤에도 자문자답을 했다.

 - 그 사이 자신감이 떨어질 이유가 있었나?

 “성접대 동영상 등의 여파 때문일지도….”

 -동영상? 중년남녀의 일탈로 빚어진 사건인 건 알겠는데, 범죄혐의가 입증되진 않았잖아.

 “그 행위 자체의 불법성 여부야 모르지. 한데 해당 건설업자는 2000년 이후 사기·횡령 등으로 20여 차례 입건됐지만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다잖아. 사정당국 실력자와 쌓은 ‘주육(酒肉)의 우정’이 그의 범죄를 방어해준 것이라면…. 지난해 김광준 검사 사건만 봐도 다단계 사기꾼한테서 검사가 돈을 받고 사건을 유야무야해 주었다잖아. 우린 권력과 유착만 할 수 있으면 웬만한 범죄는 무죄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일로 법무차관이 낙마했고, 지난해 김광준 검사도 결국 구속됐어. 이게 우리 사회의 견제장치가 잘 가동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들이 재수없게 걸린 건 아니고? 권력 있는 곳에 비리 있다는데 빙산의 일각이면 어떡하지?”

 - 그래도 세상엔 양심적으로 살려는 사람이 더 많아. 아무리 권력자끼리 힘을 합쳐도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어.

 “정말 그럴까?”

 이런 ‘어리석은’ 자문자답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으면 좋겠다.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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