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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의 위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불도저」 한 대의 작업능력은 인부 3백 명의 작업량에 맞먹는다고 한다. 도로공사나 정지작업 현장에 동원돼서 엄청난 폭음을 내뿜으면서 흙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과연 그 힘의 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 시민의 표정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특히 그 「불도저」의 힘이 유능한 행정관리들의 감투를 수식하는 용어로 전화된 느낌이 있어 야릇한 심정이다. 「불도저」장관에다 「불도저」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선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 밀고 나간다는 말이 과연 우리나라에 「불도저」가 처음 도입된 시기와 일치하는 지는 모르나, 확실히 그 유행이「불도저」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인식한 일련의 정치가들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요모조모로 따지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과 눈치만 살피다가 광화문 지하도 하나 파지 못하던 과거의 행정에 비하면, 얼마나 통쾌한 「불도저」의 위력인가 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불도저」의 위력이 제아무리 크다해도 그것이 허물어서는 안 될 「성역」까지를 마구 밀어댈 때 국민은 결코 찬성만을 보낼 수는 없다. 길을 넓히는 것까지는 좋으나 언제 보상해 줄지 기약이 확실치 않은 공약을 내세워 사유 재산권을 마구 침범한다면 그것은 벌써 정상적인 행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몇몇 개인의 재산권 침해도 큰 문제이거니와, 그 기보다는 자유사회의 이상 또는 그 기본적인 「룰」이 「불도저」의 「캐터필터」밑에 깔려 들어가는 것이 더욱 슬프고 가공할 일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이른바 수익자부담이라 해서 거액의 부담금이 사전예고도 없이 마구 시민에게 부과된다면, 선량한 소시민은 부득불 교외로 교외로나 내쫓겨야만 하지 않겠는가. 실 시세 보다 무거운 과세기준을 매겨 놓고 엄청난 취득세를 물리는 것이 「불도저」의 위력이 될 수는 없다. 허물어서는 안 될 「라인」을 깍듯이 지키면서 큰 효능을 발휘할 때에만 기계는 문명의 이기가 될 수 있다. 「불도저」의 위력 때문에 비록 일부일망정 얼룩진 시민의 표정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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