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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1달러, 더 깎지는 말아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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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정부는 외국인 가정부에 대한 대규모 임금삭감을 고려하고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까지도 홍콩 경제불황의 고통을 감수해야 옳은가?

올해 26세인 와휴 나닉푸르완다리(Wahyu Nanikpurwandari)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인도네시아 람퐁(Lampong)에서 온 그녀는 현실에 만족할 뿐 아니라 홍콩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는 동생들에게 얼마간의 돈이라도 송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잠자리가 주인집 거실인 것은 좀 불편하지만 방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일주일에 6일, 하루 16시간씩 고단한 일을 하면서도 가정부란 직업이 원래 그런 거라 여기고 있다.

시간당 1달러(약 1천3백원)도 못 받고 있지만 애초 고용계약 조건이 그랬고, 이 사실을 알고 시작했으니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일이 정말 시간당 1달러 짜리 밖에 안 되는 것인가?

"그 보단 조금 더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달러 가치도 안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와휴는 자신의 말이 요구사항인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이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와휴 같은 가정부에 대한 임금삭감 결정은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의 몫을 줄이는 전형적인 착취사례로 여겨진다.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할 때, 경제 불황기의 고통을 최저임금 근로자들에까지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일부 홍콩인들은 홍콩경제 침체기에 임금삭감은 당연하다며 외국인가정부 23만여 명의 급료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 정부도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재 4백71달러(약 61만7천원)인 가정부의 최저임금을 최고 20%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내달 초순이 지나야 결정이 나겠지만, 임금삭감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1999년엔 비슷한 논의 결과, 5% 임금삭감이 있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척 킨펀(Chok Kin-fun) 차관은 홍콩 현지인들의 임금이 삭감되는 마당에, 외국인가정부들에 대한 고통분담 주장은 당연한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호황기에 그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받아들여지듯이, 불황기에는 정부가 행하는 임금삭감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제조업과 음식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임금이 인상됐다는 사실은 그의 논리에 허점이 있음을 말해준다.

홍콩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필리핀 출신: 67%, 인도네시아 출신: 29%) 최저임금 근로자로 홍콩인들보다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현재 시간당 5달러를 받고 있는 홍콩인 가정부들은 임금이 줄어들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간당 8달러씩 받아 왔다.

홍콩 주재 필리핀 영사인 마리아 제네이다 앙가라-콜린손(Maria Zeneida Angara-Collinson)은 "외국인가정부들은 최저수준의 임금을 받는 사회적 약자"라며 "이들의 임금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또 "홍콩 정부는 불황 탈피 수단으로 가정부의 임금을 삭감하려 하지만 이 정책은 홍콩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정부 임금삭감정책은 오히려 필리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경제는 해외 파견 근로자들이 보내는 60억 달러(약 7조8천6백억원) 상당의 송금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정부 급료를 조정할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패트리샤 산토 토마스(Patricia Santo Thomas) 필리핀 노동부 장관이 자국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홍콩으로 날아왔다.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은 내달 방문할 예정이다.)

회담에서 홍콩 인적자원부 장관인 패니 로우 판 츠우-펀(Fanny Law Fan Chiu-fun)은 자국의 경제상황과 동료들의 임금수준, 그리고 "정치적 고려"(의미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등을 감안해 임금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외국인가정부의 임금삭감 여부가 결정된다면 이번 게임에 노동자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사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홍콩사회에서 가정부들을 후원하는 세력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가정부를 고용하는 홍콩인들 모임(Hong Kong Employers of Overseas Domestic Helpers Association)의 설립자 겸 대변인인 요셉 로우(Joseph Law)씨는 "와이셔츠를 정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가정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다림질이나 쇼핑으로 보내는데, 이런 활동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인 로우씨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통화가 평가 절하돼 있고, 홍콩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가정부의 임금을 15% 정도 삭감해야 한다며 정부에 로비하고 있다. 그는 또 홍콩에서 일하는 외국인가정부들은 타이베이 가사노동자들 만큼 수입을 올리고 있고, 싱가포르 노동자의 2.5배 이상을 벌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가사 노동자들 또한 정부가 임금을 삭감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단체들의 모임인 이주자권익보호연합(Coalition for Migrants' Rights)의 대표로서 지난 8년간 홍콩에서 가정부로 일해온 필리핀 출신 로리 브루니오(Lori Brunio)씨는 현 사태에 대해 "맹공을 받고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이 단체는 임금삭감을 반대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였다. 브루니오는 또 이미 많은 가정부들이 법정 기준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번 쉬는 휴일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사람들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들은 모두 가족과 헤어져 홍콩으로 일하러 올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커녕, 우리가 홍콩에서 사는 것에 감지덕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고통을 줘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인터뷰 도중 그녀가 던진 푸념이다.

DAFFYD RODERICK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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