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극 10화(1)|극장 이야기 - 이해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각계 전문인들이 그 분야의 숨은 얘기, 일화, 연구 등으로 엮을 이 「논픽션·시리즈」는 「10화」형식으로 분야마다 1O회씩 연재한다. <편집자주>
극장이 생긴 후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인류의 악으로 부정하였으나 오늘도 여전히 극장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와 천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이란 묘한 곳이다. 태양을 등져 공연이 없을 때는 대낮에도 어둠침침하여 지척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텅 빈 객석은 한밤중과 같이 조용하기만 하고 「프로시니엄·아치」의 윤곽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어두운 무대에서는 전에 배우들이 분장하였던 여러 인물들이 쏟아져 나와 한바탕 복마전을 이룰 것만 같다.
거기에는 배우에 의하여 순간의 생명을 향유하였다가 박탈당한 수많은 가상의 인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덧없이 짧은 숙명에 대하여 원한을 품은 극중인물들이 유령과 같이 무대 위를 방황하고있다. 「유령의 집」- 현실의 인물이 저승의 유령들과 거침없이 교류를 한다. 「햄릿」이 선친의 유령과 대화를 하고 「맥베드」가 마녀들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허다한 여신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개막 전에 고사를 지내야하고 화장실에서 칼을 뽑으면 불길한 일이 생기고 무대에 뱀이 나오면 흥행도 뱀을 잡는다.
문화의 전당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비문화적인 인습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석기 시대의 동굴생활에서부터 겪어온 잊을 수 없는 한가지 사실이 잠재해 있다. 혼자 사는 것을 싫어하는 버릇이다. 혼자 있으면 공연히 무서운 생각이 들고 또 쓸쓸해 진다. 혼자 있기보다는 여럿이 모여있는 것이 든든하다. 그리고 또 여럿이 모여서 가만히 앉아있기 보다는 누가 무엇을 지껄이고 흉내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이 훨씬 즐겁다.
우리들이 각자 다 느끼고있는 것을 그자는 큰소리로 떠들면서 우리들의 산만한 기분을 한데 모아서 공통된 기분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그저 그자의 하는 것에 끌리어 자신을 저버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저버릴 수 있는 순간 - 악착한 현실고를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이것이 극장이란 유령의 집에서 마법을 써서 만들어지는 일이라면 그 유령은 우리를 해치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의 삶과 깊은 인연을 맺고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에게 공통 의식을 발견하여주는 유익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극장이 오늘과 같은 형태로 지붕을 덮고 햇볕을 막고 인공적인 조명을 비치게 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전의 연극은 장엄한 하늘 밑에서 햇볕을 쬐며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산등성이에서 장마당에서 여인숙에서….
일찌기 영국의 「콜든크레크」는 연극에서 배우를 추방하고 그와 대행하여 초인형론을 제창하였으나 그의 힘으로도 극장에서 배우를 내쫓을 길은 없었다.
희곡은 극장을 떠나서 극장 밖에서 서적의 형식으로 행세할 수가 있고 또 무대장치 역시 연극을 떠나서 미술작품으로 존재할 수가 있으나 배우만은 연극을 떠나서 극장 밖에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곡이 없이 연극이 존립하고 무대장치 없이 연극이 존재한 일은 있으나 한번도 배우 없이 연극이 존립한 적은 없다.
미우나 고우나 배우는 극장에서 내쫓을 수 없는 존재다. 희곡·장치·연출 등 모든 예술이 배우예술을 위하여 존재하고 또 연극은 배우예술에서 시작되어 배우에게서 끝나고있는 것이다.
연극은 배우의 내면에서 호흡을 하고 배우의 호흡 속에서 극장은 이루어지고 있다.
배우는 그의 내면에 극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고 관객을 모아놓고 배우가 연기를 하는 장소가 곧 극장이 되는 것이다. 극장이란 결코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또 유령의 집만이 극장이 아닌 것이다.

<연극연출가·극단「신협」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