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일동포 경제기반은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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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건(李熙健) 간사이(關西)흥은 전 회장이 불법 대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李전회장이 60만 재일동포 사회의 금융 대부(代父)였으며, 신한은행 창립과 서울올림픽 지원 등 고국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李씨 부자의 사법적 처리 문제는 일본의 영토와 법체계 내에서 이뤄지는 일인 만큼 전적으로 일본 당국에 맡길 일이다.

문제는 李씨 부자의 체포로 재일동포 사회의 신용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간사이 흥은 같은 신용조합은 재일동포 사회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97년 말 34개에 달했던 한국계 신용조합은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절반 이상 도산했다. 조긴도쿄(朝銀東京)등 조총련계 조합들도 거의 붕괴됐다. 대부분 자영업에 의존해온 재일동포들은 이제 생업자금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은행들은 영세업자인데다 신용도가 낮은 동포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구실을 못하게 된 신용조합을 대신하기 위해 지난해 우리 정부와 민단(民團)을 주축으로 추진했던 민족은행 설립이 무산된 것도 문제다.

동포들이 최대한 돈을 모으고 한국과 일본 정부도 출자해 설립하려 했던 민족은행은 동포 사회의 분열과 이를 조정하지 못한 현지 공관의 능력 부족으로 실패했다.

이 시점에서 재일동포 사회의 안정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노력이다. 특히 동포 사회의 금융 기능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민족은행 설립 방안은, 일차 무산되긴 했지만 그래도 실현 가능한 대안이다.

주일(駐日)공관을 필두로 동포 사회의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면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외교.경제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일본 땅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동포들이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해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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