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경영학의 진리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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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대통령'이 세간의 화제인 가운데 경영과 리더십의 본질을 모색하는 이례적인 경영학 서적이 선보였다. 『경영학의 진리체계』(경문사,1만3천원) 라는 제목부터 이색적인 이 책은 인사.재무.마케팅 등에 관한 기능별 접근을 답습하지 않는다.

인간.역사.기업.국가의 성패(成敗) 사례가 통합된 '종합학으로서의 경영학'이다.'철학적 경영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런 시도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의 윤리를 지향하는 제3의 경영학 탐색이다.

인간 본능과 진화의 역사에서부터 동서양 고전과 문학, 그리고 영화 등을 넘나들며 공생의 리더십을 찾아가는 과정은 책읽기의 또 다른 재미다.

'혼자서 작업한 학제(學際) 연구'인 이 신간은 한학의 토대 위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독문학.물리학.전기공학 분야는 물론 경영학 학위까지 두루 '수집'해 온 저자 윤석철(서울대 경영학.62) 교수의 이력에서 비롯됐다.

-책 말미를 보면 윤교수는 교수생활 동안 10년 단위로 의미있는 저작을 내며 자신의 학문적 중간결산을 해왔다.
"내가 추구해온 학문은 보편 진리의 탐구다. 책 서술대로 생존경쟁은 이미 5억3천만 년 전(캄브리아기) 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이 숙명을 극복하면서 너와 나 모두가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길을 모색해 왔다. 고교시절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은 뒤 '삶에 이르는 길'을 써 보겠다고 생각한 이래 필생의 과제로 삼고 있다."

-개인에서 기업.국가 경영에 이르기까지 경영의 지혜는 필수다. 경영과 리더십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정.직장.국가 같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경영과 리더십의 참 의미는 자기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다."

-책에서 '과거의 경영학 이론은 겸손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또 다른 부분에서는 '지도자의 강한 집념과 의지, 그리고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지도자의 비전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도자는 개인적 오만에서 벗어나 겸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만은 자기만을 생각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지도자의 조건으로 인간의 아픔.정서.필요에 대한 감수성을 강조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은 인간적 매력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감수성과 매력은 체계적인 경영학을 정립하려는 윤교수의 의도와 달리 추상적이지 않은가.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부인의 아픔을 생각해서 기저귀를 빠는 남편의 마음은 감수성의 산물이다. 이런 감수성은 기업이 고객의 필요를 예측하고, 정치가가 국민의 아픔을 생각하게 하는 실제적 자질이다. 그걸 왜 추상적 개념으로 보는??더불어 같이 사는 이웃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려면 자기희생이 따른다. 인간의 삶에서 자기희생은 아름다움(美) , 즉 매력의 원천이 된다."

-윤교수는 '인간은 신체적.정신적 능력에서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리더의 감수성과 매력은 선천적이란 말인가.
"감수성도, 자기희생(美) 도 모두 인간 능력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능력을 미리 알기 어렵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자기 능력과 한계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제로 섬 경쟁을 피하는 인(仁) 의 경영학이야말로 참된 삶의 길'이라는 구절도 눈길을 끈다.
"인은 인(人) +이(二) 로서 너와 나 두 사람을 의미한다. 또 오행(五行) 사상에서 인(仁) 은 나무 목(木) , 즉 생명존중 사상이다. 따라서 인의 경영학은 경쟁력을 추구해서 승리하는 삶이 아니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론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물질적.정신적 가치를 '주고 받는' 공동체만이 살아 남는다고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인용해 설명한 대목이 기억난다. 그런데 동시에 공동체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비능률적 부분의 제거가 불가피하다고도 말하고 있다. 이율배반 아닌가.
"배가 풍랑을 만나 무게를 줄여야 전복을 면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비능률적 부분의 제거를 피하려다 모두 죽는다면 그것은 경영도, 리더십도 아니다."

-맹자가 말한 인(仁) 과 의(義) 를 이율배반으로 보면서 "이율배반적 인과 의의 공존만이 상생을 실현할 지혜"라는 윤교수 주장도 그런 뜻인가.
"그렇다. 인은 포용하는 가치이고, 의는 배제하는 가치다. 오행사상에 의하면 의는 쇠붙이(金) 이고 칼.도끼.가위 등 생명을 자르는 도구를 상징한다.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의 손에도 가위가 들려져 있고, 법의 정의(正義) 개념도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제거해야 할 요소를 희생시키는 데 있다. 가능한 한계상황까지 인을 추구하지만 조직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면 비능률을 제거하는 의로 선회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에서 의로 전략수정하는 '한계상황'은 어느 지점인가.
"조직전체가 쓰러지게 될 위기가 '한계상황'이 아닐까? 그걸 판단하는 것은 리더십의 지성이고,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건 도덕성이다."

-경영서의 경우 기능적 실용서가 대부분인 독서시장에서 윤교수의 연구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게 실현 가능할까 묻고 싶다.

"무한경쟁이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숙명인 상황에서 인과 의 그리고 매력과 비전의 공존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필연이다. 지도자의 비전이 공동체 삶을 위해 자기희생을 지향하는 것일 때 그것은 조직의 응집력을 높이는 매력이 된다.

비전은 공동체 미래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방법론이다. 그것은 제품(서비스) 과 기술, 그리고 그것을 수용할 시장 속에서 공동체의 미래를 조망하는 시력(視力)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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