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의’를 줄여 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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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오늘 오후 수업’을 일본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今日の午後の授業’이다. 일본어에서는 명사와 명사를 나열할 때 우리의 ‘의’에 해당하는 ‘노(の)’를 집어넣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 우리말에서는 ‘의’가 없어도 말이 잘되므로 빼야 한다.

 “소득의 향상과 식생활의 서구화로 쌀의 소비량이 부쩍 줄었다”에서도 명사와 명사 사이에 모두 ‘~의’를 집어넣었으나 이는 일본식 어법이다. ‘국민 소득 향상’ ‘식생활 서구화’ ‘쌀 소비량’이 우리식 표현이다.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우리말에선 원래 조사 ‘~의’가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가리키는 ‘나, 너, 저’를 예로 들면 조사 ‘ㅣ’가 붙어 ‘내, 네, 제’로만 사용됐다고 한다. ‘내 사랑’ ‘네 물건’ ‘제 자식’ 등 현재도 그대로 쓰이는 형태다. ‘~의’가 붙은 ‘나의, 너의, 저의’ 형태는 조선 후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개화기에는 흔히 쓰이게 됐다고 한다. 이는 일본어에서 여러 가지 문장성분으로 쓰이는 조사 ‘の’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침실로’(이상화의 시), ‘나의 살던 고향’(이원수의 ‘고향의 봄’ 중) 등이 당시에 나온 작품으로 ‘나의 침실’은 ‘내 침실’, ‘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 살던 고향’이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말 어법이다.

 특히 ‘나의 살던 고향’은 주어(‘내가’) 자리에 ‘~의’가 잘못 쓰인 것으로 “정치의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처럼 요즘도 종종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정치가 변화하는 ~”으로 고쳐야 한다. 얼마 전 TV 자막에서도 ‘북한의 고려 중인 추가 조치는?’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북한이 고려 중인 ~’이 바른 표현이다.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렸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해야 한다” 등처럼 최근 들어서는 ‘~의’를 남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각각 “스스로 한 약속을 저버렸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개발해야 한다”로 고쳐야 한다. ‘만남의 광장’도 억지스럽게 말을 만든 것으로, ‘만나는 광장’으로 해야 우리식이고 의미가 제대로 통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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