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국인 현장점검] 쉬운 대중교통 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지하철은 도시의 얼굴이다. 편리한 환승과 쾌적한 냉.난방, 독특한 역(驛)문화를 갖춘 지하철은 이방인들에게 상큼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러면 월드컵 기간 외국 손님들을 경기장까지 편하게 모셔야 할 우리 지하철은 어떤가.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10개 도시 중 경기장까지 지하철이 닿는 곳은 서울과 인천 뿐. 부산은 공사가 덜 끝나 경기장까지 곧바로 갈 수 없고, 대구와 광주는 망치질이 한창이지만 월드컵 때는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 미로 같은 환승역

2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플랫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려는 캐나다인 관광객 에드워드 가렛(32)이 충정로와 을지로 방향 중 어느쪽 열차를 타야 6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지 몰라 발을 구르고 있었다. 선로 벽에 2호선 모든 역명이 영어로도 적혀 있지만 6호선 환승역 안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만난 미국인 영어강사 데이빗 레이스(38)는 "환승을 하려면 보통 5~1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다 표지판마저 헷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 5년이나 살았지만 아직도 지하철은 미로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외국인들이 1~8호선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어 있는 지하철을 바꿔타고 월드컵경기장으로 가기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인천 문학경기장(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려면 경인전철 부평역에서 인천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7호선를 타고 온수역에서 경인전철로 환승한 뒤 부평역에서 다시 인천지하철로 바꿔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경인전철 부평역은 지상 1층, 인천지하철 부평역은 지하 4층 깊숙한 곳에 있어 환승하려면 10분 가량 걸린다는 점.

특히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에 어린이와 노약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동선(動線)을 따라 걸려있는 환승 안내표지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윤석철(45.회사원.연수구 연수동)씨는 "다행히 에스컬레이터와 무빙로드가 설치돼 있지만 혼잡하다"고 말했다.

# 헷갈리는 안내방송.노선 색깔

"디스 스탑 이즈 신도림 신도림(This stop is shindorim,shindorim)."

외국인들은 지하철 안내방송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역 이름이 익숙지 않은데다 일부 환승역의 경우 갈아탈 노선 색깔 안내방송이 없어 황당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2호선 열차가 충정로역에 정차할 때 역이름과 "5호선으로 환승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영어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5호선 색깔이 보라색이라는 내용이 방송되지 않는다.

많은 외국인들이 노선번호가 아닌 노선의 고유색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급히 고쳐야 한다. 인천지하철도 외국어 안내방송은 영어 뿐.

그러나 인천에서 월드컵 경기를 갖는 국가 모두가 비영어권(프랑스.덴마크.포르투갈.터키.코스타리카)이다. 지하철 역사 표지판 대부분은 영어.한자.한글이 병기돼 있지만 기본적인 정보의 번역을 빠뜨려 외국인들을 어리둥절케 한다. 열차시각표.출구표지 등이 그렇다.

노선의 고유 색상도 제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5호선 종로 3가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1호선 표지 색깔이 파란색과 짙은 남색 두가지로 쓰여 혼란을 부추긴다.

# 부산, 서브웨이는 어디에□

부산에는 월드컵경기장까지 직접 가는 지하철이 없다. 당초 월드컵 이전에 월드컵경기장(연제구 거제동)까지 가는 3호선을 완공한다는 계획에 따라 1997년 11월 설계에 들어갔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2005년께나 완공되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부산시는 월드컵 이전에 지상구간 공사만 끝낼 계획이다.이에 따라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도경기장까지 2㎞ 가량 떨어져 있어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부산시는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과 가까운 시청.교대.동래 등 3개 역에서 셔틀버스 10대를 10분 간격으로 운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세차례 부산 경기(6월 2.4.6일)가 대부분 비영어권 국가(프랑스.파라과이.우루과이.폴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인데다 무더운 날씨에 관중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교통 전쟁이 우려된다.

# 붕어빵 역사,부족한 편의시설

지하철 역사는 대부분 닮은 꼴이다.특색이 없다.

미국인 브라운 켈리(42.무역업)는 "서울을 여섯 차례 방문해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인상에 남는 역사가 없다"고 말했다.

화장실도 새로 단장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5~8호선 역의 화장실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지만 1호선 시청역,종로3가역, 2호선 신촌역 등 오래된 역사는 상대적으로 불결한 편이다.

세면대에 오물이 묻어 있거나 바닥에 흙탕물이 괴어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냉방의 경우 '찜통철'로 불리는 부산 1호선이 가장 열악한 실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