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24) 마지막 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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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총리가 2004년 5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저는 물러갑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이임 인사를 하고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그의 뒤로 노무현 대통령과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이 서있다. [중앙포토]

사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갔다.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사표다. 1962년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만두고 또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지만 공직에서 보낸 시간이 30여 년이다. 소신과 원칙, 두 가지로 버틴 세월이었다. 물러나는 국무총리가 각료 제청권을 행사한다면 헌법 정신을 어기는 일이 된다. 권한대행으로 일하며 원칙의 중요성을 더 깊이 새겼다.

 노 대통령이 왜 나에게 자꾸 장관을 제청해달라고 요청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둘러 개각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장관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청와대는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조기 개각”이라고 밝혔다. 집권 여당 내 정치 역학 구도에 따라 일시적으로 개각 수요가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과 원칙을 무시해선 안 된다.

 김우식 실장 편에 사표와 함께 청와대로 보낸 문서도 문제가 됐다. 장관 제청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적었고 조언을 해준 사람을 ‘Y교수’ ‘여당 C의원’ 등 익명으로 표기했다.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이들이 누구인지 색출에 나섰다. 국무조정실 사람 몇몇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총리를 그만두고 나서 전해들은 얘기다. 적잖이 마음이 불편했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2004년 5월 25일 오전 8시50분쯤 청와대 세종실에 들어섰다. 천천히 한 바퀴 돌며 국무위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자신이 매고 있는 넥타이를 들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오늘은 밝은 넥타이를 매고 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후임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총리대행을 하게 될 그다.

사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한 장관 제청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적은 문서. [고건 전 총리 제공]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웃으며 말을 했다. “저에게 허락도 안 받고 그만둬도 되나요.”

 재치 있는 사람이다. 나도 웃으며 답했다. “아…. 법무부 장관에게 허락의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세종실 입구로 걸어나갔다. 오전 9시가 다 되자 회의장으로 오는 노 대통령이 보였다. 그를 맞이한 후 나란히 걸어 회의실로 들어갔다. 총리석에 앉았다. 보통 총리가 국무회의 개회선언을 한다. 말을 꺼내기 전 고개를 들어 노 대통령 쪽을 봤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했다.

 “인사 말씀을 하시죠.”

 지금 이임 인사를 하란 얘기다. ‘그 시간이 왔구나.’ 이임사를 적어온 종이를 안주머니에서 꺼내 펼쳤다. 표정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얘기했다. “(노무현 정부) 첫 번째 총리로서 17대 총선을 관리하고 새 국회가 구성되는 직전 시점이 마칠 시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뜻을 대통령이 가납해주셔서 짐을 벗게 됐습니다.”

 마지막 인사다. “저는 물러갑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30여 년의 공직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내가 정치를 할 거다, 아니다를 놓고 말이 많았다. 신경 안 썼다. 이번이 마지막 사표라는 사실은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무위원 모두가 같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등을 돌려 회의장 문을 향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공무원으로 일하며 겪은 많은 장면이 스쳐갔다. 공인 40년, 공직 30년. 긴 세월이었지만 어느새 흘러갔다. 사표를 쓰고 다시 공직에서 들어서고 7번을 반복했다.

 ‘첫 번째 사표….’ 그때를 떠올렸다. 내무부에 들어간 지 이제 막 3년이 지난 20대 중반, 나는 첫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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