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 온라인 도박 전면 합법화 땐 한국도 불똥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웹보드 게임에 기생하는 불법 환전상의 폐해는 심각하지만, 해결책 마련은 쉽지 않다. 단속을 강화하면 오히려 음성화하는 지하경제의 속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등 해외에서 온라인 도박을 합법화하는 것도 변수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속성상 국내 규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스톱·포커 게임 사행화 방지 대책’을 내놨다. ▶1회 최대 베팅 규모 1만원 ▶1일 10만원 이상 손실 시 48시간 게임 이용 제한 ▶이용자가 게임 상대방을 선택할 수 없도록 변경 ▶게임 접속 때마다 본인 확인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열린 정부규제개혁위원회가 이를 철회했다. 규제개혁위원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노명선 교수는 “규제 방식이 너무 포괄적이고 상위 법률의 위임이 없는 등의 문제가 회의에서 지적됐다”며 “폐해를 줄이기 위한 다른 대체 수단이 많은데 전면적인 금지에 가까운 규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상위법을 개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인터넷도박방지위원회 이창근 위원장은 “불법 환전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규제가 무산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연간 수십조원 규모인 불법 온라인 도박 시장을 막지도 못하면서 연간 5000억원 매출 규모인 합법 웹보드 게임만 옥죈다는 주장이다. 게임산업협회는 지난달 말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을 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게임 관련 규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움직임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인터넷 산업 중심지인 미국에서 온라인 도박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재정난에 봉착한 주정부들이 세원을 늘리기 위해서다. 지난달 21일 네바다주는 미국 최초로 온라인 도박을 전면 허용했고, 26일에는 뉴저지주가 뒤를 이었다. 델라웨어·캘리포니아주 등도 허용할 태세다. 관련 업체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네바다주에만 벌써 수십 개 업체가 온라인 도박업 면허를 신청했다. 이 중에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게임 업체 징가가 포함돼 있다.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도박 시장이 커지면 페이스북·애플·구글·MS 등도 이 사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카지노와 달리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도박의 제한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규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관련 시장을 적절히 열고, 철저히 관리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들이 예로 많이 드는 것은 ‘아이템 거래’ 시장이다. 역할(롤 플레잉) 게임의 핵심 요소인 아이템을 개인들이 직접 거래할 때는 사기와 폭력 사건이 빈발했다.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합법적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사례가 줄었다. 현재 아이템베이·아이템매니아 양대 회사가 연간 1조5000억원 규모인 국내 아이템거래 시장의 90% 이상을 소화한다. 아이템베이 김미정 홍보팀장은 “세금도 안 내며 지하에 숨어있던 아이템 거래 시장을 양성화했다는 게 우리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온라인 도박의 합법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목소리는 아직 없다. 도박의 폐해가 워낙 크고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이다. 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협회는 도박과 건전한 게임을 철저히 구분한다”며 “게임에 대한 규제는 줄여야겠지만 온라인 도박을 찬성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승녕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