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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넘은 호위함·초계함 여전히 ‘죽음의 문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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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기동 훈련 중인 해군 2함대. 함정 가운데 규모가 작은 호위함·초계함은 여전히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취약하다. 워낙 노후화돼 방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함정들이 2020년 중반까지 한국의 주력함이다. [사진 해군]

3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천안함이 피폭됐다. 군은 이날을 ‘국군 치욕의 날’로 정하고 전력 증강과 국방 개혁을 약속했다. 여러 대책을 내놨다. 그러면 서해는 더 안전해졌는가. 해군 현역 장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해군 함정들은 여전히 대책 없이 떠 있다”고 자조한다. 천안함 3년, 해군 전력 증강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2013년 3월 19일 백령도 서쪽 해상. 해군 2함대와 작전사령부 소속 천안함급 초계함(1200t), 광개토왕급 KDX-1(3000t), 문무대왕급(4500t) 함정이 조를 이뤄 초계 중이다. 부쩍 험악해진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유사시 방어를 위해서다. 작전 속력 33㎞(18노트)로 빠르게 기동하며 소나로 북한 잠수함을 탐지한다. 신호는 없다. 이상무. 그러나 내일도 이렇게 평온하리라는 기약은 없다.

대잠 항공 전력은 강화, 실전엔 무용지물
예비역 제독 A씨는 “백령도 서방 해역에서 작전하는 초계함과 호위함(1800t급)은 죽음의 문턱에 있다”고 말한다. 현역 해군 장교도 “맞는 말이다. 2010년 천안함 피폭 당시 해군과 지금 해군 사이에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안함 피폭 직후 해군은 여러 조치를 언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해의 수중정보 수집 강화다. 천안함 피폭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육군 예비역 장성은 “당시 그런 자료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북한 잠수함을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란 의미다. 그런 차원에서 해양전술정보단은 하루 네 차례 서해5도 주변 바다의 해수 상태, 염도, 수온 정보를 작전 중인 함정들에 보낸다. 대(對)잠수함 작전을 하려면 음파를 쏘는 소나가 필수인데 이런 요소가 음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북한 잠수함·잠수정의 침투 예상 해도도 만들었다. 그러나 함장 출신 해군 예비역은 “그런 작업은 과거부터 해왔다.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백령도 부근과 서해 NLL을 따라 고정형 수중음파탐지망(SOSUS)을 설치해 북한 잠수함의 이동을 감시하기로 했지만 예산 문제로 완료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측은 “확인해줄 수 없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대잠수함 항공 전력도 외형은 강화됐다. 미군의 구형 대잠초계기(P-3B)를 8대 도입, 개량해 8대였던 전력을 16대로 늘렸다. 이들은 전방 해역에 중점 배치돼 북한 잠수함 활동을 집중 감시 중이다. 그러나 예비역 제독 A씨는 “이 계획도 80년대부터 추진됐던 것으로 새 조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P-3C 초계기 8대의 성능 개량도 진행 중이며 해상작전헬기로 아구스타사의 AW-159 와일드캣이 선정돼 8대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천안함 피폭 같은 사태를 막기는 어렵다. 북한 잠수함을 잡으려면 초계기와 대잠 헬기가 NLL 가까이 접근해야 하지만 그러면 북한 지대공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들어간다. 헬기도 미사일 요격을 피해 바다에 붙어가듯 비행하는 실정이다. 천안함 사태 뒤 항공전력 투입 문제가 재론됐지만 구체화되지 못한 것은 이런 전술적 어려움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명박 정부 때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위원장 이상우)는 서해 작전용 소형 잠수함 구상을 내놨다.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도 작전할 수 있는 500~800t급 잠수함을 많이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해군 관계자는 “소형 잠수함은 수중 탐지·작전 능력이 부족하고 공간도 너무 좁아 승무원에게 악영향을 준다. 그래서 지속적인 작전이 어렵다는 이유로 잠수함대 쪽에서 반대했다”고 말했다. 예비역 제독 B씨도 “3000t급은 돼야 제대로 된 장비로 북한 잠수함을 수중에서 탐지하고 공격할 수 있다. 소형 잠수함은 특수작전용”이라며 “소형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진행 중인 3000t급 잠수함 사업 예산을 다 그리로 돌려야 해 오히려 해군의 능력을 퇴보시킨다”고 말했다. 현재 해군은 2020년까지 장보고-2(2000t급)를 9척 건조하며 2020년부터는 장보고-3(3700t급) 6척을 건조한다.

그래서 해군은 최전선에 투입되는 함정의 생존 능력 개선을 위해 구형 레이더와 소나의 교체를 검토했다. 10척 초계함에 300억원의 긴급 예산을 투입, 소나를 교체키로 했다. 그러나 레이더 교체는 예산이 너무 들고 교체해도 최대 10년 뒤면 함정이 퇴역한다는 이유로, 소나는 ‘잠수함 탐지 능력을 키우려면 배 밑에 대형 소나를 달아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포기됐다. 현재 소나(아래 사진)보다 더 큰 소나를 배 밑에 달려면 함정의 구조를 거의 개조해야 한다. 극히 어려울 뿐 아니라 함정이 10년 뒤 퇴역하기 때문에 투자효율도 생각해야 한다. 해군 관계자는 “참새에게 커다란 돌을 달아매는 격”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현재의 신규 함정 건조 계획이나 무기체계를 무시하고 함정을 당장 구입할 수도 없다.

2020년 대 중반 돼야 차기 호위함으로 교체
해군의 주력함인 호위함(1800t)·초계함(1200t)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계획되고 건조돼 1980년대부터 작전에 투입됐다. B씨는 “이들 함정은 건조 때부터 잠수함 생존성이 부족한 것을 알았지만 돈이 없어 이를 감수하고 만들었으며 대(對)수상 전투용인 저가의 함정이다. 그래서 성능 개량도 할 수 없다. 배 밑은 불가능하며 갑판도 함포 위주로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법으로 계획 단계부터 성능 개량 단계를 반영해 설계하도록 한다.

해군에선 90년대 말부터 초계함·호위함의 레이더·소나 현대화, 대함미사일 방어 능력 장착 등이 거론됐고 2000년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예산뿐 아니라 이런 구조적 한계가 반영된 것이다.

결국 해군은 끌고 다니는 TB-260K 어뢰음향대항체계(TACM)를 설치하는 선에서 그쳤다. 어뢰 접근이 탐지되면 고출력의 음향 방해 신호를 수중에 쏘아 어뢰가 방향을 틀게 만드는 장비다. 2013년까지 모든 초계함에 장착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TACM을 쓰려면 먼저 북한의 어뢰를 먼 거리에서 탐지해야 하는데 함정 자체에 그런 능력이 없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 어뢰의 사거리가 10~15㎞여서 TACM은 생존성을 보장 못한다.

결국 천안함 사태 3년 동안 해군의 원거리 대잠 항공기 능력은 늘었지만 가장 절실한 함정의 생존성 강화는 제자리인 셈이다. 한 해군 관계자는 “북한은 최근 잠수함 훈련을 다섯 배나 늘렸고 5~6척이 협동 공격하는 전술도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공은 한 척에 어뢰를 동시에 발사해 단시간에 침몰시키거나 여러 척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활용해 성공을 거뒀다.

해군은 이 밖에 ‘고속 기동 및 동조 경비’라는 작전도 병행하고 있다. 고속 기동은 어뢰 공격을 못하게 빠르게 기동하는 것, 동조 기동은 함정이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기동하며 공격당하면 다른 함정이 반격하거나 구조하는 작전 형태다. 해군 관계자는 “서로 다른 급수의 함정 세 척이 불규칙하게 움직여 공격을 피하고 탐지를 강화하는 작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대잠수함 능력이 낮은 함정들이 모두 공격당하면 의미가 없어지며 개별 함정의 능력 향상과도 관계없다. 이런 현실은 건조 중인 차기 호위함(FFX)이 이들을 모두 교체하는 2020년 대 중반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 해군의 노후화된 초계함·호위함들은 가장 위험한 접적(接敵) 해역에서 ‘대잠수함 생존 능력 제로’인 상태로 ‘깜깜이 초계’를 하고 있으며 그런 속수무책 상태를 길게는 10년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안성규 기자, 김병기 객원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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