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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지도력 평가 '극과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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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푸들(복슬개)'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처칠'인가.

파리에서 발행되는 영자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4일 블레어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판자들은 블레어가 미사일방어(MD)계획이나 이라크 전쟁 등 국제 문제에 있어 미국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다며 '부시의 푸들'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반면 지지자들은 그가 확고한 신념으로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맞서고 있다면서 블레어를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에 견주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평가는 이라크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영국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을 처음부터 지지하며 걸프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유일한 유럽 국가다.

이는 이라크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를 "어깨와 어깨를 맞댄 동반자로 미국과 유럽 대륙을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도를 지나친 블레어의 부시 추종에 대한 비판이 영국 내에서도 거세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반미 성향인 노동당 좌파 의원들은 블레어의 지도력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라크전이 발발한다면 영국 노동당은 주전파와 반전파로 갈라져 블레어의 지도력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전론이 득세할 경우 블레어의 경쟁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노동당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영국과 유럽의 반전 움직임을 '값싼 반미주의'라고 평가절하했다. 블레어는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국제 문제에서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 접근방법을 내세우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잘못된 이분법'이라며 "유럽과 미국은 같은 편"이라고 반박했다.

블레어가 부시의 노선에 추종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블레어는 미국의 일방적인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탈퇴를 막고 러시아와 합의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국내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적이지만 코소보.아프가니스탄 사태 등과 같은 국제 현안에 있어서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블레어의 기독교적 신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같은 나쁜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을 '옳은 일'이자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블레어는 "이라크 사태는 냉전 이후의 국제 권력구도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로 이라크전 이후 자신이 유럽의 핵심 지도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수주 앞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전이 판가름낼 전망이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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