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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전·부산 도 넘은 ‘전관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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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전도시철도공사 박상덕(57) 사장은 대전시 행정부시장 출신이다. 지난해 12월 사장 공개모집 때 지원서를 내 선발됐다. 하지만 대전 관가에서는 공모 전부터 박 사장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대전시 관계자는 “원서를 내봤자 들러리만 선다는 소문이 나돌아 응모자는 박 사장을 포함해 2명에 그쳤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전북개발공사 사장 공모에는 전북도 건설교통국장 출신 홍성춘(61) 사장만 단독으로 응모했다. 이 역시 “도청 고위직 출신이 사장에 내정됐더라”는 소문이 퍼진 결과였다. 공개채용으로 뽑는 지방 공사·공단 대표나 임원 자리에 퇴직을 앞둔 지방자치단체 고위 간부를 사실상 내정한 뒤 형식적으로 절차를 거치는 사례는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방판 ‘전관예우’인 셈이다.

 본지가 전국 16개 광역 지자체 산하 공사와 공단의 임원 현황을 파악한 결과 전체 46개 기관 임원 117명 중 55.6%인 65명이 지자체의 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사장과 공단 이사장으로만 한정할 경우 공무원 출신 비율은 60.9%(46곳 중 28명)였다. 공무원 출신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시였다. 도시철도공사·시설관리공단 등 4개 공사·공단의 임원 9명 중 77.8%인 7명이 공무원 출신으로 조사됐다.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류한국 전 달서구 부구청장이,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이진근 전 대구시의회 사무처장이, 환경시설공단은 권대용 전 상수도사업본부장이 맡고 있다. 이들 기관의 사장·이사장뿐 아니라 전무 자리까지 환경시설공단의 자체 승진자 1명을 제외하면 대구시 간부 출신이 독점하고 있다.

대전시의 경우 4개 공사·공단의 이사장·상임이사 등 임원 11명 가운데 8명(72.7%)이 시청 간부 출신이었다. 부산시(70.6%), 광주시(62.5%) 등 전국의 지자체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부산시는 산하 6개 공사·공단 중 부산도시공사·부산교통공사·부산환경공단·스포원·부산시설공단 등 5곳 대표가 퇴직 공무원 출신이다. 이는 지자체 간부들이 정년을 1년 안팎 남겨둔 상태에서 지자체가 설립한 공사·공단으로 자리를 옮기는 관행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이사장은 2급 출신이, 전무 등은 3∼4급이 자리를 차지하는 게 관행이다. 지방공기업법의 적용을 받는 공사·공단 이외에 지자체가 출연한 산하기관까지 범위를 넓히면 퇴직을 했거나 임박한 지자체 공무원들의 일자리는 더욱 늘어난다. 지자체 인사담당자는 “공사와 공단의 업무가 공공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공무원이 관리하는 것이 나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전관예우 관행이 지방 공기업의 부실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이 사장·임원으로 가 있는 동안에는 지자체의 후배 공무원이 제대로 감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북도의 출자·출연기관은 2007년 자체 경영평가를 시작한 이후 D등급을 받은 곳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다.

 전남대 오재일(행정학) 교수는 “지방공기업 임원에 민간 전문가를 발탁하기 위해 도입한 공모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며 “공정한 채용을 위해서는 인사검증 공청회를 거치게 하고 추천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식·홍권삼·최경호 기자 

◆ 지방공사·공단=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지자체가 출자해 만든 법인. 공사는 공공성을 목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다. 공단은 지자체 업무를 위탁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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