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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7000만~1억 3년직 임원 사실상 단체장 입맛대로 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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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853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월미은하레일은 시험 운행 동안 곳곳에서 부실이 드러나 단 한 차례도 못 달려 보고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최악의 부실사업으로 꼽히는 이 사업도 지방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한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한 인천교통공사의 역대 사장 대부분이 인천시 2급 공무원 출신들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노면전차를 시공비가 훨씬 비싼 모노레일로 바꾼 것이나 인천터미널에 입주한 백화점의 임대보증금(1000억원)을 뽑아 이 사업에 쏟아부은 결정 등 잘못된 경영 판단이 이어졌다. 인천시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이 지방 공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고려했더라면 생각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지방 공기업의 잘못된 인사 관행은 이처럼 치명적인 폐해로 이어질 수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 공기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총 49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박남춘(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방 공기업의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를 개선하고 전문 경영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전관예우 관행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이 ‘지방판 전관예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부산시 고위 공무원 출신인 배태수(56) 부산교통공사 사장은 지난해 7월 법원 판결로 물러났다가 한 달 뒤 재공모 절차를 거쳐 사장직을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1년에 진행된 사장 공모에서 강모(54)씨는 배 사장의 임명이 잘못됐다며 부산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현직 공무원이 사장직에 응모할 수 있도록 한 관련 규정은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않아 무효라며 강씨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판결에 뒤이어 시행된 사장 재공모 결과는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지방공기업법에 따르면 지방 공사와 공단 임원은 공개채용으로 선발하도록 규정돼 있다. 7명으로 구성되는 임원추천위원회가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거쳐 복수로 최종후보를 추천하면 자치단체장이 이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한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체장 추천 2명, 이사회 추천 2명, 의회 추천 3명 등으로 이뤄지는 구성비율이 문제다. 이사회 측 위원은 시장·도지사가 추천하는 것이나 다름없 다. 결국 단체장의 의중에 따라 임원이 뽑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공사·공단 임원 선발 때가 되면 지자체 간부들은 노골적으로 ‘운동’을 한다. 정년퇴직을 1년가량 앞둔 2∼4급 간부가 대부분이다. 사장·이사장은 연봉 9000만∼1억원, 이사는 7000만∼9000만원에 3년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 대구시의 한 공무원은 “ 고위 공무원이 어떤 자리에 갈 것이라고 알려지면 민간 전문가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때 5∼6대 1이던 임원 채용 경쟁률이 평균 2대 1 수준으로 떨어진 이유다. 전문 경영시스템으로 공기업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공개채용제도의 명분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정기환·김상진·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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