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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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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입동이 지나면 김장철.
김장은 우리나라에서 찬이 아니라 겨우살이 식량이다.
입동절이 9월이면 입동전에 담그고 입동절이 10월이면 입동후에 담가야 한다는 옛 할머니들의 가사유훈도 이제는 옛말―김장철도 근대화 (?) 되어 11월하순부터12월초순까지 기온이 영하3도아래로 내려간때가 좋다고 관상대가 알려준다.
파르스름한 잎사귀에 희멀건 배추살결. 그리고 보드랍게 쭉 쭉 뻗은 무우는 그 싱그러운 맛에서 길고 추운 겨우살이 입맛을 돋우고, 눈 온날 찬없는 식탁위에벗이 된다.
시집온 새아씨의 음식솜씨는 김치담그는데서 안다고 하지만 김장철 우물가 배추씻는 새아씨의 모습은 한폭의 소박한 한국풍정.
흰저고리 다홍치마에 하얀 행주 치마를 질끈 동이고, 팔뚝까지 걷어 올린 저고리 소매속에 보이는것은 고운 속 배추인가? 새아씨 살결인가?
그러나 아름다운 풍정도 아낙네들에게는 거센 시집살이― 가을철 부터 양념걱정을 비롯하여 입동후 추운 얼음물에 손을 적시고 소금물을 뒤집어 쓰는가 하면 매운 고춧가루로 범벅을 해야하는 것은 한국 아낙네 만의 숙명이기도 하다.

<솜씨 따라서 별미 담그는법갖가지>
겨울을 나기위해, 만산초목이 눈에 덮이는 한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아낙네는 또 하나의 태산같은 짐을 지는 것이다.
김장이란 우리나라고유의 말로 김치·깍두기·동치미·짠지등을 담그는것을 일컫는데 김장가운데 맛과 보기의 여왕은 단연 김치.
김치는 그 모양에 있어, 그맛에 있어, 그솜씨에있어, 그 지역에 있어, 각각 특색을 지닌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담갔는가는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김치의 어원이 순수한 우리나마 말로 엮어진것으로 보아 한국의 고유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주문왕때 김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있으나 우리나라 김치와는 다른것으로 한자로 쓰여지는 김치란말의 심채, 심장등도 김치라는 우리말을 어원으로하고있다. 김치의 미각풍류를 보면 함경도의 어회김치, 평양의 냉면김치, 개성의 보쌈김치, 경상도의 총각김치, 서울의 통김치등 별미가 많다.
함경도의 어회김치는 가자미 동태 낙지 갈치등 어회를 넣고 만드는데 회가 들어감으로써 싱싱한 맛을 돋워주는것이 특색이다. 평양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김치보다 김칫국으로 맛을 낸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에 국수를 눌러다가 찬 김칫국에 말아 덜덜떨며 먹으면서도 엉덩이를 따뜻한 아랫목에 지지면 『징해 좋다』 는 감탄이 절로난다.
개성의 보쌈김치나 서울의 통김치는 아낙네의 공들이기와 맵시있는 솜씨 자랑이 한몫을 낀다. 옛날 할일없어 입맛다시기에 바빴던 양반들은 통김치를 보쌈김치로 하나씩 하되 한개의 작은 질그릇 항아리에다 통김치 하나를 넣어 장판지로덮고 초로 밀봉하여 땅속에 파묻어 놓고는 일년내 꺼내 먹었다니 그 맛은 희한할지 모르지만 그시간과 인력소모를 생각하면 한숨이 걸로 난다.

<궁중식에못끼고 서민이즐겨먹어>
김치의 종류는 통김치, 무우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개저), 장김치 (장저), 비늘김치, 총각김치, 그리고 무우와 배추를 마구 섞어 버무리는 석박지등.
그러나 김치는 임금의 수랏상에 오르지 못하여 맛과 모양을 자랑삼는 궁중음식에는 끼이지를 못했다. 때문에 김치는 서민들의 애호물. 김치가 왕궐을 중심으로만 엮은 우리나라사적과 기록에서 빠져 있는것도 이탓이아닐까?
임금의 수랏상에는 깍두기가 송송이란 이름으로 올랐다.
곰탕이나 설렁탕에 곁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깍두기는 김장중의 공주.
깍두기는 서울이 유명하다. 서울깍두기의 특색은 배추를 많이넣는것. 전라도에서는 똑딱이라고하여 서울깍두기의4분의1정도밖에 안되게 작게썰어만든다.
또하나김장중에서 잘생긴 왕자는 그시원한 맛과 품위를 자랑하는 동치미. 하얀 사기그릇에 뽀얀국물, 그리고 갸름한 동치미가 몇개 떠있는 그위에 새빨간 고추가 동동 떠있는 모습은 우리 조상들이 음식에 맛과함께 모양도찾았다는 사실을 쉽게 알려준다.
동치미무우는 황해도, 연일, 장연무우가 손꼽혔다지만 허리잘린 이 강산에서 그맛도 아득히 멀어졌고 배추는 서울의 방아다리 배추가 유명했다 지만 지금은 어느곳인지 찾을길 조차 없다.
토질과 기후로 보아 배추나 무우 모두 서울 이북이 잘되며 남쪽으로 갈수록 배추폭이나 무우가 잘게된다.

<널리쓰인재래종 개량종도많아져>
때문에 전라도지방에서는 김치를 「지」 라고하여 깨소금드 넣고 갖은 양념을 다 넣지만 그맛이 서울 북쏙에서 담그는 김치의 맛을 따르지 못하는데 지금은 뚝섬, 광나루배추가 좋다고 이름이 나있다.
또한 배추는 호배추가 많이 들어와 종자가 개량되었지만 아직 배추김치맛에 있어 조선배추를 따르지 못해, 다루기 힘들고 (조금만 추우면 얼기쉽다) 일찍 담가야하는 조선배추를 맛을 아는 가정에서는 많이 쓴다.

<양산화단계멀고 주부들은고달파>
김장이 미치는 가정의 시간과 인력의 낭비를 고려, 김치나 까두기의 양산화가 한편에서 도모되고 있지만 아직도 먼꿈―. 습속화된 김장철아낙네의 노고를 덜어주기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김치는 겨울동안 어려운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종합적인 영양 구실. 야채에는 「비타민」A·C가 많이 있는가하면 푸른색짙은 이파리에는 철분도 있다고….
또 고춧가루에도「비타민」A·C가 많을뿐아니라 양념으로 쓰이는 마늘류에는「비타민」B의 흡수를 효과있게하는 「알리신」(ALLICIN) 이란 성분도 있다는것. 각종 젓갈을 무우나 배추에 섞음으로써 김치속에 단백질성분이 함유되며 김치가 익어가는동안 젓갈에서 우려나는 「아미노」산은 특미가 되고….
거기다 생선뼈를 섞으면 「칼슘」분도 생겨 종합적인 영양가가 될수밖에.
하지만 맛과 영양과 겨우살이 식량으로 없어서는 안될 김장이 김장독에 가서는 되도록 간소하게 되도록 아름답게 살려는 우리나라 주택사정을 방해한다.
안락의자나 내어 놓고 바람이나 씌어야 마땅할 「아파트」의 「베란다」가 곧 김장독 진열장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간은중용이제일 양념도식성따라>
이삿짐도 꾸리다보면 장과 김장독이 반이상을 차지하고, 모범주택이라 멋들어지게 근대화주택을 지어 놓지만 한곳을 꼭 차지하는 김장독들은 아무리 정답게 보려해도 눈에 거슬리기 마련.
기억자 초가집 넓은 마당에 가지런히쌓아논 장독대위, 키순으로 나란히 놓여져있어야만 그 멋과 풍정을 살릴수있는 김치독은 아무리 해도 우리 가정 살림살이근대화에는 토라져 외면하고 만다.
그것도 김장독은 반드시 땅속에 파묻어야 제맛이 난다고하니 「아파트」 살림에 김장독은 꼴칫거리가 된다.
그러나 김치맛은 곧 우리 살림의 맛. 너무 시어도 안되고 또 덜익어도 안되고 짜도안되고 싱거워도 안되고…어려운중용을 지키는 우리민족의 생활의 맛과 멋이아닌가?
임금의 수랏상에는 안올랐을 망정, 모든 백성의 겨우살이 식량으로 한겨울 커다란 구실을 떠 맡아 온 김치는 한국아낙네의 고달픈 노동속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생활의 맛인것이다.
영하5도로 수은주가 내려갔다. 김장시장앤 청초한 배추포기들이 쌓여있고 주부들은 겨우내 식탁을 장식할 김장거리를 골라사느라 바쁘다.
오순도순 추위속에꽃필 가정의따뜻한 맛이 어쩌면 김장을 담그는 주부들의 알뜰한 마음에서 움터나는지도 모르겠다.
글·양태조
사진·이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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