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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재원 마련 묘책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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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요즘 부가가치세제에 대해 이런저런 개편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원 135조원 중 세입예산에서 조달하기로 한 55조원을 마련하는 데 부가가치세제가 가장 쉽고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돼 시행된 이래 가장 많은 세수입을 올리는 세목이다. 지난해의 경우 납부된 국세 203조원 중 부가가치세가 54조원으로 26.6%를 차지한다.

 현행 부가가치세 세율은 10%다. 54조원을 거두었으니까 1%만 올리면 5.4조원, 2%를 올리면 10.8조원을 더 징수할 수 있다. 따라서 세율을 올리자는 주장도 많이 있으나 최고통수권자가 세율 인상은 안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과세 관청이나 관련 단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는 상황이다.

 최근에 제안된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제도’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도입 주장의 논거를 살펴보면, 현행 시스템은 물건값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한 금액을 사업자에게 주고 사업자가 세액을 국가에 납부하게 돼 있다. 사업자가 체납을 하거나 세금계산서 자료상 또는 거래 중간단계에 가공의 사업자를 끼어넣어 부가가치세를 편취하는 이른바 폭탄거래를 할 경우 10% 세액이 국고에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소비자가 은행 카드로 물건을 살 때 아예 해당 은행에서 판매자에게 물건 값만 주고 10% 세액은 바로 국고로 보내자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체납액 규모는 연간 1조7000억원(2011년 기준)이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해당 금액이 온전히 국고에 들어올 수 있으며, 부가가치세의 암적 존재인 세금계산서 자료상이나 폭탄거래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논리적이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세액을 은행이 국고에 직접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완전한 새것이 없다는 말처럼 인간이 고안한 제도는 대부분 명(明)과 암(暗)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제도는 소비자의 현금 사용을 부추겨 오히려 어렵사리 정착된 부가가치세제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소비자가 전자상가에서 카드로 하는 것보다 현금으로 하면 10% 싸게 해줄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소비자는 싸게 사서 좋고 판매자는 해당 금액을 탈세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거래로 전환하자는 유혹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우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부가가치세 체납액 중 과연 얼마를 국가가 건질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체납 발생 원인 중 상당수는 소비자가 판매자에게 돈을 주지 않아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회사를 통해 직접 납부함에 따라 국가가 지불해야 될 징세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어렵사리 정착된 전자세금계산서 유통질서가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동일한 부가가치세 과세체계를 지니고 있는 유럽 국가에서는 이 제도를 한정적으로 쓴다.

 요즘 눈만 뜨면 몇 천억원 또는 몇 조원이나 되는 추가적인 세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세율 인상 없이 과연 가능한가. 세제만을 고쳐서 매년 15조원을 더 징수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칫 납세자 사생활 침해나 부당한 재산권 침해 또는 기존 제도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정부가 국가재정 건전성에 관심이 있다면 복지 수준을 세입 증가에 맞추어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그러니 정치권이나 정부는 복지재원 마련 방법에 대해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안 창 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