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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 사글세방에 자기가족 버리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메마른 산하에 동심을 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구름처럼 산 넘고 물 건너 방방곡곡 국민학교를 찾아다니는 유랑교사. 그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동요나 동시를 읊어주며, 글짓기도 가르친다. 장장 7만리 길 산골마다, 갯마을마다, 외딴섬마다 이 촌부교사의 발자국은 남겨졌다. 적막하게, 목마르게 자라는 시골아이들은 이 시정의 소나기를 맞고는 마음들을 축였다. 이런 동화 같은 얘기를 엮고 다니는 사람은 김신철(38) 씨. 전남 함평군 함평리161에 주소를 둔 그는 13년의 교단생활도, 중학교의 교감 자리도 박차고 벌써 3년2개월 째나 이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지리도 가난한, 그러나 무슨 신념 속에서 이글거리는 사람이었다
지난 10일 김씨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오두막이 있는 향리로 돌아왔다. 어둠침침한 토막방 한간, 쪽마루 그리고 바람막이도 없는 부엌 한간이 이 초가삼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한달 4백원씩 무는 사글세 집이었다. 풍상에 그을린 얼굴, 해어진 가죽가방, 허름한 양복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품은 그의 기나긴 여로를 얘기한다.
두코줄줄이는 아버지의 무릎에 매달리며 『언제 가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이것이 아버지를 맞는 아이들의 인사란다. 『오냐. 오냐. 안 간다』 아버지는 그들을 달랬다. 김씨는 함평에 있는 광인중학교의 교감을 지내고있었다. 그의 교단생활이 전남대를 졸업한 후부터 13년째 접어드는 참이었다. 분필가루 속에 파묻혀 살면서 그는 늘 가슴에 걸리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시골 아이들은 배고픈 것은 그만두고라도 정서마저 이렇게 궁핍해 있을 수 있겠는가? 국어시간에 작문이라도 시킬 양이면 아이들은 백지를 마주앉고 백지인 채 시간을 다 보낸다. 그 아이들의 정서는 그처럼 백지였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광주의 몇몇 국민교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처음엔 동요를 읊어주기 시작했다. 때로는 동화도 들려주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서』 그의 소매부리를 놓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앞서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는 현상을 마음속에 새겨 넣을 줄 아는 지혜에 조금이나마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용기를 갖기 시작했다. 교감을 그만두고 「유랑학교」를 만들어야지! 그의 친구들은 깜짝 놀라 만류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그의 신앙심은 그 결단을 더욱 굳게 해주었다. 64년7월 사직서를 내고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 그는 집을 떠났다.
3년 계획으로 우선 전남의 국민교(7백56개교)를 온통 순회할 작정이었다. 방학 때나 그는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난 10월로 그의 3년 계획은 끝이 났다. 그 동안 순회한 학교는 무려 7백35개교. 하루 평균 걷는 거리만도 20여 리는 실하게 되었다. 3년 동안 걷기를 무려 1만7천 수백 리. 찻길까지 헤아리면 7만리는 되었다. 운동화 한 켤레가 20일을 견디면 바닥이 드러났다. 쪽배를 타고 찾아다닌 낙도만 해도 60여 군데였다.
그런 고심참담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흑산도를 다녀오는 길엔 풍랑을 만나 이틀동안이나 바다에서 발이 묶여 공생을 했다. 자은도에선 도무지 그가 먹을 것이라고 배춧잎뿐이었다. 된장 한줌과 배춧잎으로 며칠을 살았다. 「버스」가 고장이나 약속시간에 닿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하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례」라면서 계란 두 알을 손에 들려주던 어느 국민교장과의 감격스럽던 작별….
그러나 남은 가족들이 겪는 고생은 그에 못지 않았다. 세 자녀는 그의 형에게 떠 맡겼지만 그래도 웃아이(13세·해성)의 교육이 난감해 그 아이는 고아원(영산포 보양원)에서 몇 달을 지내야 했다. 부인 박덕례 여사는 그새 삯바느질을 배웠다. 지난가을엔 재봉틀 한대를 살수 있었고, 생계는 그 재봉틀이 간신히 이어 주었다.
글짓기를 가르치고 나선 백일장을 연다. 성실한 아이들에겐 상장과 「메달」을 준다. 그 숫자만 해도 2천 개가 넘었다. 그가 받은 시골학교 교장의 「즉흥 감사장」도 1천2백장이나 되었다. 어느 학교에선 녹음기에 담아둔 그의 강의는 시골아이들 외로움을 달랜다는 편지도 빈번히 받는다. 그런 학교가 80여 군데나 되었다. 그는 이미 「은하수」 「코스모스」 「장미꽃 동네」 등 자신의 작품집을 세 권이나 갖고있는 숨은 시인이기도 했다.
요즘 그를 분주하게 만드는 일은 그 동안 수집한 아이들의 작품을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었다. 전 8권 예정-. 돈이 없어 편집만 해놓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 일도 그의 강인한 의지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그때 그는 다시 길을 떠나 전국의 국민교를 순회할 계획이다. 그것은 그의 생애를 저장하는 집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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