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가 개혁에 앞장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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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가 어제로 출범 4년을 맞았다. 절체절명의 외환위기에서 노동계와 사용자간에 일종의 사회 협약으로 시작된 노사정위는 그동안 교원노조 합법화, 근로시간 단축 등 노사 문제의 갈등 조정 역할을 해왔다.

노사 분규 건수도 줄어들고 협력적 노사 문화의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뒤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1~2년뿐이었다.

위기가 한풀 가신 듯싶자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 노사 문제의 해결에 무기력하다는 비판에 최근에는 해체론까지 들먹여지고 있다. '타협과 양보'라는 노사 문화의 대전환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아시아 최초의 사회적 합의 시스템이라는 수사적(修辭的) 제도만으로는 복잡한 노사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 노사 앞에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공기업 개혁 등 구조 개혁의 추진과 주5일 근무제 도입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전망에 대해선 우려의 분위기가 큰 게 사실이다. 선거 시즌과 맞물려 올해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뤄 보아도 노사 분규가 증폭될 우려가 크다. 이미 양대 노총은 동투(冬鬪) 이후 정치화 투쟁을 선언해 놓은 상태며 이해집단의 목소리 높이기와 상승작용을 빚어 강성 노동운동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의 최대 걸림돌인 구조 개혁의 부진도 일차적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하지만 그 한가운데 노조가 있다.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장이 최근 한 강연에서 '노조의 반발이 구조 개혁 지연의 최대 요인'이라고 언급한 것은 설득력을 지닌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사회 변동 속에 노동환경도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노조의 양태는 변화의 수용보다 현상 고수의 편이었고, 그 결과 부정적 부산물이 쌓여온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상당수 기업에서 존재하는 노노 갈등과 일부 노동 전임자의 귀족화 현상은 노조원 스스로 노조를 외면하는 현상마저 빚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의 잦은 쟁의는 그 여파가 협력 업체에 미치면서 대기업 노조와 하청.협력업체 근로자의 갈등도 더 커지고 있다.

노조의 이기주의가 오히려 연대를 허물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취한 것을 잃지 않고 노사가 건전한 파트너십을 찾으려면 노와 사, 그리고 정부가 제 역할로 엄정히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노사 문제가 계속 꼬여온 데는 정치권과 여론이 부추겨온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노조 스스로 이젠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라 개혁을 선도한다는 자세 전환이 절실한 때다.

올해 경제 회복은 국내외 경제 여건의 호전 여부 못지 않게 노사 문제의 향배에 달려 있다. 현 정권은 정서적으로 근로자와 닿아 있는 점이 있으나 향후의 정권은 누가 등장하든 더 대립적으로 흐를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현 정권이 앞장서 노사 화합의 모범과 매듭을 만들어 보여야 한다. 현 정권이 임기 말 노사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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