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철수 꼭 찍겠다” vs “오라는 데 없어 온…”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7일 오후 5시 서울 노원구 상계역 앞 사거리. 진보정의당 당원 10여 명이 “노회찬은 무죄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노회찬 당대표가 지난달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노원 병 의원직을 상실한 데 대한 항의시위다. 이홍우 최고위원은 “부당한 판결을 재·보궐 선거로 심판해달라”고 했다.

사거리 건너편엔 새누리당이 내건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국민의 삶을 활짝 피우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인근 아파트 벽엔 민주통합당 이동섭 노원 병 당협위원장 사진이 박힌 플래카드도 걸렸다. 50대 여성 두 명은 횡단보도에 서 있는 주민들에게 새누리당 허준영 당협위원장의 명함을 나눠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50대 여성은 “며칠 전부터 마이크 소리도 들리고 플래카드도 걸린 걸 봤지만 별 관심 없다”고 말했다.

#9일 오전 11시 서울 노원구 마들역 앞 상가. 앞에 내놓은 옷을 정리하던 가게 주인 민영희(49)씨에게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개인적으로 팬인데 대선 후보를 사퇴하던 날 눈물이 났다. 이번에 나오면 꼭 찍어줄 거다.” 하지만 손님으로 온 주부 김미영(53)씨는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며 “안씨는 교단에 있을 때 제일 빛이 나는데 왜 신당을 창당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씨는 머쓱한 듯 “(새누리당으로 지역 의원을 지낸) 홍정욱씨가 잘생기고 정치도 깔끔하게 해서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분이 나오면 안철수씨와 박빙이 될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서울 노원 병 지역에서 한 달 넘게 남은 4·24 보궐선거 열기가 일찌감치 퍼지고 있다. 지난 3일 안철수 전 원장이 무소속 송호창 의원을 통해 출마를 선언하면서다. 안 전 원장 측은 ‘안철수 신당’ 창당도 시사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8일 조사에 따르면 안 전 원장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새누리당 지지율이 37%, 안철수 신당 23%, 민주통합당 11%라는 결과가 나왔다. 안 전 원장의 노원 병 출마가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원 병은 강북 지역인 데다 젊은 층 인구도 많아 야권 강세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역대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정당은 매번 바뀌었다.<표 참조> 주민들은 “여기는 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찍는다”(떡집을 운영하는 62세 이한춘씨)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심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셈이다.

사분오열 야권, 고른 지지로 뭉치는 여권
야권은 사분오열되는 분위기다. 우선 진보정의당이 노회찬 대표의 부인 김지선(58)씨를 전략공천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정미 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에 맞서 진실을 국민 법정 앞에 세우는 선거이고 이를 가장 잘 실현할 후보가 김씨”라고 말했다. 당내엔 “(안 전 원장의) 일방적인 출마선언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여론이 높아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민주통합당은 일단 “원내 제1 야당으로서 후보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이동섭 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하지만 안 전 원장이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을 도운 것을 감안해 후보를 내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많다.

새누리당도 ‘안철수 대항마’를 모색하고 있다. 허준영 당협위원장 외에도 이준석 전 비대위원, 홍정욱 전 의원, 안대희 전 대법관, 함승희 변호사 등이 거론된다.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허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총선 출마로 주민들이 많이 알아본다”며 “안철수씨보다는 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점이 월등하다”고 주장했다. 당 서병수 재·보선 공천심사위원장은 “11일에 첫 회의를 할 예정”이라며 “안씨의 출마 여부 확정이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다.

본지가 7일과 9일 노원 병 민심을 들어봤다. 안 전 원장의 출마에 우호적인 이들이 많았지만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두 아이와 산책을 나온 프로그래머 한민호(33)씨는 “동네에 신혼부부가 많이 살고 교육열이 높은데 안씨가 오면 지역이 많이 발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계 중앙시장에서 과자 노점을 하는 신영철(64)씨는 “주변에선 차기 대선 후보가 온다고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장광원(32)씨는 “진보 쪽에서 안 전 원장 출마에 ‘밥그릇 왜 건드리느냐’ 하는데 지역주민들을 밥그릇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며 “후보 평가는 주민들의 몫”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지층도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채소가게를 하는 우세종(44)씨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왔지만 안씨가 신당을 창당하면 그곳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조미숙(27)씨는 “(안 전 원장이) 대선 실패 후 밑바닥부터 다시 한다고 하니 밀어주고 싶다”며 “원래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안씨가 잘하면 신당을 지지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전 원장에 비판적인 이들도 상당했다.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김일동(79)씨는 “안씨는 대선 끝나자마자 외국에 나가놓고 아랫사람 시켜 (출마를) 발표하는 게 거만하고 욕심이 많아 보인다”며 “이왕 나올 거라면 부산 영도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후보와 붙으면 좋을 텐데 왜 여기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정주부인 김미현(55)씨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오라는 데가 없으니 노원으로 왔다. 주위에서 다들 나쁜 사람이라 욕한다”며 “안씨만 빼고 아무나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의 부인 김지선씨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최철규(80)씨는 “노회찬은 이번 사건 빼고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회찬이 도와주면 부인도 잘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미영(24)씨는 “노회찬 의원이 시작한 지역정책을 부인 김씨가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가정주부 이지선(59)씨는 “노회찬씨가 의원직을 잃어 아깝긴 하지만 부인은 또 다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역구 세습”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를 언급하는 이는 적었다. 이한춘씨는 “(민주당) 이동섭씨가 지역주민들과도 많이 어울렸는데 민주당은 국민을 위해 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물망에 오른 후보들에 대해 고른 지지를 보였다. 자영업자 허정회(56)씨는 “허준영씨가 지난 선거 때 나왔고 주민들과 친분을 쌓았다”면서도 “꼭 그분이 아니라도 새누리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이기남(42)씨는 “후보 적합도로는 이준석, 당선 가능성으로는 홍정욱씨”라며 “홍씨는 노회찬씨와 일대일 대결에서 이긴 적이 있고, 이씨는 젊고 새 정치를 상징할 수 있어서 안철수씨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건은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느냐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재·보궐 선거는 평일 투표라 20~30대 투표율이 낮을 수밖에 없어 야권이 분열되면 안 후보로서는 승산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을 고민한다는 안 전 원장으로선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신경 쓰일 부분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 조사한 결과 안 전 원장의 노원 병 출마에 대한 찬성 의견은 34.1%(반대 46%)에 달했다. 이택수 대표는 “새누리당 지지층이 반대하고, 대선 당시 단일화가 화학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전통 야권 지지층도 등을 돌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류정화 기자 jh.insight@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관계기사]

▶ 안철수, 귀국 하루 전날 지인들에게 전화해 한 말은
▶ 안철수 "영화 '링컨' 보며 여야설득 리더십 많이 고민했다"
▶ 노회찬 부인 김지선, 노원병 출마…"安 양보해 달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