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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국인|창간 1주 기념 논문(완)민족의 종교성|이기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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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종교란 「민족의 마음」>
나는 종교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그리 쉽게 해명되지 않고 있다. 마음은 우리 안에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리를 하나로 융해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항상 「나」를 의식하면서 생각하고 식별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음」과 구별하여 「생각」이라고 했으면 좋음 직한 것이다. 그 「생각」은 「나」의 욕심의 방향에 따라 그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고 그 「나」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욕심은 사실 욕심을 없애고자하는 욕심인 까닭에 「내」 안에 있는 그 깊숙한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사실로서 나타난 역사상에서 그 깊숙한 「마음」의 전모를 고스란히 발견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은밀히 숨은 「마음」의 아름다운 편모들을 역사적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 중에서 찾아보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민족의 고귀한 마음, 그 얼을 자기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고자 할 때에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민족의 종교성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을 묻는 마당에서 인간의 「마음」은 민족이나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래 한결같이 참되고 선하고 청정무구한 것이라는 전제 밑에서 출발한다.
나는 우리민족의 역사 위에 나타난 그 근원적인 순수한 「마음」의 아름다운 편모들과 그 그릇된 변모들을 지적하며 그 연유를 고찰하는 과정에 그 해답은 얻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롭고 힘있는 자부>
나는 우리 고대인들의 생각 가운데 있은 여러 가지 형태의 천손사상은 능력과 이상에 있어서 충만한 자신을 지녔던 우리 고대의 「엘리트」들의 의롭고 힘있고 기쁨에 넘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려 호태왕의 웅장한 비와 그 속의 글귀들 특히 「오시황천지자의」하고 외친 그 천손의 자부는 우리민족이 보여존 가장 믿음직스러운 인간긍정의 심성이었다.
단군의 개국전설에는 후대의 불교적 윤식이 있으므로 고대인의 생각을 반영한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알기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서도 우리는 다른 개국전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손민족으로서의 강한 인간긍정이 드러나 있음은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거기에는 천상계의 신들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즉 신화보다도 인간들 사이의 경리적인 사건이 이야기의 줄거리가 되어있으며 그것이 끝에 가서 천과 관련지어져 있을 뿐이다. 주몽전설에서 여러 가지 기이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주몽은 비인소생」이라고 한 대소의 말이며, 주몽 자신의 「아는 시천제의 자며, 하백의 손이니 금일도둔할제 추자수급이란 나하냐?』한 것 따위는 인간적 교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정당한 자부의 표현이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신라 육부의 개척자들을 「사개종천이강」이라고 한 것도 거의 같은 심성을 표명하는 것이다.

<불교융성과 화랑도>
나는 우리 민족이 적어도 중국대륙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야기된 사회적 혼란의 시대, 신라 말기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정당한 인간적 자부감을 가지고 민족의 정력을 발전시켜 왔다고 믿는다. 그 가장 좋은 결실을 나는 신라 통일기의 불교교학의 성과에서 그리고 그 실천적 표현으로서의 화랑의 활약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라 통일기 불교를 영원불후의 것으로까지 제고시킨 원효대사의 사상과 생활은 우리민족이 그 주어진 객관적 조건 속에서 이룩할 수 있었던 종교적 능력의 위대한 성취였다. 우리는 그의 사상과 생활에서 작은 「나」 의유, 「내」 고집의 초극을 보며, 참다운 원융무애의 정신의 취현을 볼 수 있다.
그는 불교를 그 후계자들이 한 것과 같이 타력적인 것, 주술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고 인간을 그 「마음」의 깊고 또 세밀한 동찰을 통해 이해하는 불교교학의 본지에 따라 정확하게 이해하고 스스로 그 실현을 달성한 가장 독창적인 종교인이었다.
초학자에게는 다소 어려운 글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실로 앞서 말한 위대한 힘을 지닌 본래의 「마음」의 경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일심지원은 이유무이독정이요 삼공지해는 융진속이담연이로다. 담연은 융이이부일이요, 독정은 이유이비중이로다. 비중이나 이륙형인 고로 부유지법이 부주야무요, 부모여상이 부인주유이며 부일이융이인 고로 비진지사가 미시위속이요, 비속지리가 미시위진야니라. 융일제부일인 고로 진속지성이 무소부립이며, 염정지상이 막부비언이요, 이유이비중인 고로, 유모여법이 전굵부작이며, 시비지의가 막부주언이니라. 이내무파이무부파하며 무립이무부립하니 가위무리지지리며 부연지대연이로다.』(금강삼매경논)
나는 이것을 인간의 「마음」에 대한 궁극적 자노의 일대선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날 고구려인이 「오시황천지자의」라고 외친 막연한 인간적 자부는 사실 이와 같은 깊은 철학적 동찰로 보다 굳건히 의식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종교의식의 첫 출발>
나는 아름다운 본래의 「마음」의 발로가 어떤 개인의 죄의식, 좌절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키르케고르」식인 사고방식에 동의한다. 그것은 이른바 종교의식의 첫 출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와 같은 인간의 죄악적 상태에 대한 자각은 우리 민족 역사상에 있어서 매우 현저하게 드러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우리의 선조들이 외국침략자들로부터 고난을 받고 그 침략자의 압도적이며 죄악적인 힘 앞에서 스스로의 취약성을 감출 길 없을 때 그들은 인간성의 추악한 모습을 외면하고 그 본래적 이상에 대한 자각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사실을 예리하게 보는 사람은 신라 말기와 고려 초의 불교 속에 말세의식이 농후해졌고 이에 따른 타력신앙과 주술적 습속이 사회에 미만해진 사실을 자각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조금도 우리 민족성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는다. 고정불변한 어떤 민족성이란 없는 것이다. 민족성이란 어떤 민족의 진리와 정의에 대한 시창적이며 정당한 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가 처하고있는 객관적 현실을 극복할만한 능력을 상실하고 타성적으로 끌려가는 반복된 생활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언제나 개변할 수 있는 심성이며 생활태도이다.

<타력신앙과 주술습성>
나는 타력신앙과 주술적 습속은 객관적 현실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전적으로 말살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우 그 주요한 귀임은 스스로 타력과 주술만을 의지하는 그 본인의 무기력에 있고 또 한편 그 귀임의 일부는 그 장본인을 그렇게 만드는 객관적 현실을 조성하는 다른 인간들에게 있다. 우리 나라 역사상에는 그와 같은 두 가지 형의 인간이 확실히 많았다.
특히 그 후자에 속하는 자들 중에 나는 위정자들과 외래침략자들을 넣는 것을 주저할 수가 없다.
나는 연단읍혈홍천일이요
추연념비하낙상이니
금아실도환사구일제
황천하사부수상인고
하고 읊은 한 시 가운데에 나타난 충절한 심경의 책임이 당시 사회의 위정배들과 당사자 자신에게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말기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불교의 변모를 전하는 기사가 많다. 중국에서도 그러했지만 점찰선악업보경의 유항과 같은 것은 그것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점복으로 선악업을 성찰하고 그 업의 제거까지도 점복으로 해치우려는 경향이 생긴 것은 불교의 타락이며 그릇된 종교성의 표현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샤머니즘」이란 점복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형태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 「샤머니즘」이 특히 그것을 중시하고 있는 데에도 타락한 불교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시정돼야 할 의존의 정신>
이러한 타력신앙과 주술적 습속의 다른 변모를 우리는 사대주의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종교란 이름 밑에서의 사대주의는 정치상의 사대주의와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그 한 예로서 박해당시의 열렬한 천주교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의 한 구절에서 인용하고자 한다.
『성하께 열렬한 마음으로 탄원하옵나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마음에 가득 찬 사랑의 표시를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가능한 한 속히 속죄의 은혜를 베푸소서…우리 불쌍한 죄인들은 열렬한 마음으로 당신으로부터 원조를 받기를 원하옵나이다….』
나는 그와 같은 단순한 의존의 정신이 진정한 종교적 태도의 전부가 되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그것이 인간상호간의 관계로서 나타날 때 그것은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행히 현대의 역경 속에서라도 우리민족이 과거와 같은 용기와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여 세계의 종교적 천위기를 쇄신함 직한 징조는 없지 않다. 나는 그것을 우리 젊은 세대에 기대해 보는 것이다. <동국대학 교수·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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