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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8) 청와대 관저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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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4년 3월 17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1인 2역을 해야 했다. 임혁 소위에겐 권한대행 자격으로 대통령상(왼쪽)을, 김희영 소위에겐 국무총리 명의로 총리상을 줬다. [중앙포토]

“저만 1인 2역을 할 뿐입니다. 달라질 게 없습니다.”

 2004년 3월 13일 오전 서울 정부중앙청사 총리 집무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김대곤 비서실장을 비롯해 1급 이상 간부들이 앉아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지 20시간 정도 지났다. 밤새 고민하며 준비한 말을 했다.

 “국무조정실은 종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해 나가시면 됩니다.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은 예전처럼 보좌해 주십시오. 권한대행으로서의 일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맡아 보좌할 것입니다. 15일 예정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어요. 앞으로도 참석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 결과만 나한테 보고하면 된다고 청와대에 전하세요. 16일 국무회의는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와 정부청사에서 번갈아 하던 국무회의는 앞으로 모두 정부청사에서만 할 계획입니다. 제 결정에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전날 저녁 청와대 본관의 현관. 노 대통령을 태우고 떠난 자동차 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있던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앞으로 주 1회 청와대에 오셔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주셔야겠다”고 말했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단순히 회의에 참석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대신하는 권한대행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정해야 하는 일이다. 대통령 탄핵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참고할 법전도 규정도 없었다. ‘상식과 원칙….’ 두 가지 기준을 되뇌며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 관저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고 9일이 지난 2004년 3월 21일에 촬영됐다. [중앙포토]

 몸 낮춘 행보를 선택했다. 직무가 정지됐다 해도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다.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총리 역할도 하고 대통령 권한대행도 하고, 나만 1인 2역을 하면 됐다. 그 구분은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

 3월 17일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이 열렸다. 행사를 앞두고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설문을 담당하는 보좌관이 원고를 가져왔다. 그런데 총리실 연설 담당 보좌관이 원고에 손을 댔다. 내가 평소 하는 연설 화법에 맞춰 문장을 수정했다. 당장 “원본을 가져오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써온 원래 연설문에서 딱 두 글자만 고쳤다. 그만큼 신경을 썼다.

 63일 동안 권한대행으로 일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한 일은 단 한 번이었다. 3월 25일 그리스·아프가니스탄·쿠웨이트·태국 등 신임 주한 대사들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기 위해서였다.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이나 외교부에서 행사를 열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국에 대한 외교 의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와대로 갔을 뿐이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청와대는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다. 노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참모들의 보고 범위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저로 떠나는 노 대통령에게 “자주 보고 자료를 올리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사흘 후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이 첫 보고를 하러 왔다.

 “앞으로 국정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은 대통령이 계속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교통정리를 해줬다. 북한 정세 등 안보 관련 정보가 핵심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는 보고가 아닌 친전(親展) 형태로 노 대통령에게 매일의 상황을 알려줬다. 박 실장은 국무회의와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 배석하고 관저에 머물고 있는 노 대통령에게 국정의 흐름을 전했다. 정무 기능이 강한 비서실 대신 정치색 옅은 정책실에 ‘채널’ 역할을 맡긴 것이다.

 박 실장에게 당부한 뒤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씀 드렸던 대로 보고 자료를 자주 올리겠습니다. 박봉흠 정책실장을 통해 서면 자료를 전달하겠습니다. 북한 정세 등과 같은 안보 자료도 NSC 사무처에서 일일 자료를 올릴 것입니다.”

 “네, 그러시죠.”

 통화는 간단했다. 63일간 권한대행으로 일하며 노 대통령과 세 번 통화했다. 이번이 첫 번째였다. 일주일여 지나 사면법 개정안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 노 대통령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거부권 행사는 일상적인 국정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 이례적인 결정을 하기 전에 노 대통령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할 때도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내 문제가 아닌 대외 관계에 대한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용천역 폭발 사고와 관련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권한대행 기간 중 노 대통령과 한 마지막 통화였다. 전화할 때마다 그는 “좋습니다” “그러시죠”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세 번의 통화는 모두 짧았다. 탄핵 소추 기간 얼굴을 맞대고 만난 일은 물론 없었다.

 권한대행에서 물러나자 “왜 노 대통령과 따로 만나 얘기도 나누고 하지 않았느냐. 몰래 만나 소회도 묻고 하지 그랬느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가한 질문이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고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다. 공식적으로 보고를 할 수 없었다. 노 대통령과 내가 따로 만나 국정에 대해 깊이 의논한다면 법을 어기는 일이 된다. 사적 만남이라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이 나에게 업무 지시를 했다는 오해를 받는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대통령에게도 크게 누가 되는 행동일 뿐이다. 박봉흠 실장을 통한 서면 보고, 간단한 전화 통화. 모두 고심 끝에 택한 행동이었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물론 청와대에서 나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지켜보고 있었다. 고달프기만 한 권한대행 생활이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사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권한

고건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할 때 법무부에서 ‘권한행사 정지된 대통령의 지위’란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어 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외교권, 공무원 임면권, 국군통수권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관저 생활, 관용차·전용기 이용, 경호 등 대통령에게 따라붙는 예우는 변함이 없다. 총리, 국무위원 등 공무원으로부터 대통령 권한행사와 관련한 보고를 받거나 그들에게 지시하는 일은 할 수 없다. 업무 연속성 유지 차원에서 비공식 보고는 받아도 된다는 법적 해석이 있지만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문제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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