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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팀역사 - 올랜도 매직 (2)

중앙일보

입력

◇ '디즈니 랜드'에 도착한 섀킬 오닐

1992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해 '로터리 픽(Lottery Pick)'을 가지고 있던 11개팀들은 신인 지명권 순위 추첨에서 각자 1순위를 잡게되는 행운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드래프트에는 어느 때보다 좋은 유망주들이 많았고 특히, 거물급 센터로 주목 받던 새킬 오닐을 선두로 알론조 모닝,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드림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던 크리스챤 레이트너 등이 참가, 지금도 84년 드래프트 이후 가장 풍성한 신인 수확이 있던 드래프트로 평가받고 있다.

1992년 5월 17일.

드래프트 지명권 순위를 정하는 추첨 결과 66개의 탁구공 중에서 10개의 공만을 배정받았던 올랜도 매직에게 전체 1순위 지명권의 행운이 돌아갔다.

드래프트 직전 팀이 조지타운대학의 알론조 모닝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돌기도 했지만 결국 루이지애나주립대의 센터 섀킬 오닐을 지명했다.(모닝은 오닐의 바로 뒤이은 2순위로 샬롯 호네츠가 지명했다)

오닐은 그를 지명했던 팀과 팬들에게 결코 실망을 안겨 주지 않았다.

그의 프로 데뷔 무대였던 92~93시즌. 오닐은 평균 23.4득점, 13.9리바운드, 3.5블럭샷, 56% 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하며 매직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또한 신생팀 이미지를 벗지 못하던 매직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서의 역할과 함께 광고 시장뿐 만 아니라 팬들에게서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왔다.

오닐은 정규시즌 경기에서 덩크슛 성공후 두차례나 림과 골대를 무너뜨리는 괴력을 보였고 올스타 선정과 함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등장은 당장 매직의 성적에 바로 영향을 끼쳤다.

91~92시즌 20승 61패에 그쳤던 매직은은 오닐이 합류한 후 41승 41패의 성적을 나타냈고 92~93시즌 마지막 날까지 인디애나 패이서스와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 아쉬운 PO 의 탈락과 또 다시 찾아온 행운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매직과 패이서스가 벌인 치열한 접전은 대단했다.

동부지구의 마지막 한장 남은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공교롭게도 양팀은 모두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루고 41승 41패로 동률을 이뤘다.

매직과 패이서스가 같은 디비전에 속한 팀이 아니였기에 그리 간단하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5번의 경우를 따져 시즌 전체 평균 득점에서 5점이 앞선 패이서스가 플레이오프에 극적으로 진출했고 매직은 아쉽게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되었다.

단장인 팻 윌리엄스를 비롯 매직의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뿐 아니라 신인 지명권 추첨에서 단 한개의 탁구공을 배정받는 불운이 이어졌다.

하위권팀들의 고의 패배를 막기 위해 기존의 동전 추첨에서 - 이를 '코인 플립(coin flip)'이라 불렀다 - 85년 드래프트부터 로터리 픽 추첨으로 변경한 방식에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팀들 중에서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이 가장 적은 갯수의 공을 부여 받아 확률상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였다.

이때문에 93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 추첨에서 매직은 아무것도 얻을게 없다고 생각했고 드래프트에 참가할 예정이던 크리스 웨버, 앤퍼니 하더웨이, 숀 브래들리의 지명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추첨 당일 '마술'이 일어났다.

바로 1개의 공을 가졌던 매직이 92년에 이어 2년 연속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가게 된 것.

NBA 드래프트 역사상 83, 84년 휴스턴 로케츠가 2년 연속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였다.

결과가 발표되자 내심 1순위 지명권 획득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댈러스 매버릭스등은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고 매직은 기대히지 않았던 '행운'에 환호 했다.

◇ 슈퍼 듀오의 등장

93년 드래프트에서 매직은 망설임 없이 당시 최대어로 꼽히던 미시건대학 출신의 208cm의 다제다능한 포워드인 크리스 웨버를 지명했다.

매직의 팬들은 오닐과 웨버가 80년대 초, 중반 휴스턴 로케츠의 랄프 샘슨, 하킴 올라주원의 '트윈 타워'(97년 샌안토니오의 데이비드 로빈슨, 팀 던컨의 '트윈타워'는 등장하기 이전)에 이어 새로운 돌풍을 몰고 올 것이라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매직은 또 한번의 깜짝쇼를 준비했다.

1순위 지명한 크리스 웨버를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3순위로 지명한 맴피스주립대 출신의 장신 포인트 가드 앤퍼니 하더웨이와 미래의 1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 한 것이였다.

팀은 오닐의 파트너로서 웨버가 아닌 하더웨이를 택한 것.

오닐, 하더웨이 두 슈퍼 듀오의 출발은 93~94시즌이였다.

팀은 당시 감독인 매트 구오카스와 재계약을 맺었고 별다른 선수 이동 없이 한층 강화된 전력을 바탕으로 개막전부터 강호 뉴욕 닉스에게 승리하며 상쾌한 출발을 보였다.

매직은 50승 32패의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고 92~93시즌 아쉽게 접어야 했던 플레이오프 진출의 꿈을 드디어 달성했다.

89~90시즌 NBA 에 참가한 이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였다.

1라운드 상대는 전년도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막판까지 경합했던 인디애나 패이서스. 하지만 경험 부족이었을까? 매직은 패이서스에게 힘 한번쓰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히며 1라운드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오닐은 2년차 시즌을 맞아 평균 29.3득점(전체 2위), 13.2리바운드(2위), 2.8블럭샷(6위), 59%의 필드골 성공률(1위)을 기록하며 리그 톱 센터 자리에 명함을 내밀었고 하더웨이 역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16득점, 6.6어시스트, 5.3리바운드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매직은 오닐과 하더웨이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에 더욱 자신감을 얻으며 94~95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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