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담화·회견 대국민 여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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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4일 대국민 담화 발표는 취임 8일 만에 나왔다. 역대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짧은 시간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엄중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발표한 담화문에서 방송 진흥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조속한 개편안 처리를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이것이 빠진 미래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회견을 열고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이라며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라고 맞받았다.

 2월 임시국회 회기를 하루 남겨놓고 대통령과 야당의 수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할 위기에 처했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새 정부의 핵심 부처로 공을 들인 미래창조과학부 김종훈 장관 후보자가 이날 전격 사퇴했다. 그는 사퇴 회견에서 “대통령의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 난맥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고 정치권을 비난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독자적 협상권을 갖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란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가 내려준 ‘방송 진흥 기능 미래부 이관’이란 지침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협상이 꼬였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갈수록 완강해졌다는 지적이다. 여야가 강경 일변도로 대치하면서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정몽준 의원·7선)거나 “일단 정부 출범은 해야 하지 않느냐”(민주당 3선 의원)는 양측의 온건 협상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새 정부 출범 8일 만의 청와대와 야당의 극한 대결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이 강하고 절박하더라도 야당의 입장을 헤아리고 절차를 존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회, 특히 야당에 충분한 설명과 협조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일방통행식으로 일을 처리해 온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란 비판이다. 동국대 박명호(정치학) 교수는 “야당이 새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지만 청와대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설득력도 부족했다”며 “결국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건 청와대인 만큼 야당에는 양보할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김종훈 후보자가 야당의 비협조를 비판하며 사퇴했듯이, 대승적 관점에서 정부 출범에 도움을 주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김종훈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지난 3일 이전에 들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담화문 카드를 빼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국정 운영의 핵심인 미래부와 그 미래부를 이끌어갈 적임자로 지명한 김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박 대통령을 급격하게 혼란에 빠뜨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의 역할과 전략 부재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호·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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