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릴레이] 천문학자와 고흐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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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 중에는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밤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다섯 작품 있다.

검푸른 하늘을 휘감을 듯 노란 후광을 내뱉는 별들을 보면 '광폭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고흐의 광기와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천문학자들은 고흐의 밤 하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미국 남서부 텍사스 주립대 천문학과 교수인 도널드 올슨 박사는 엉뚱하게도 '저 별들의 위치가 모두 정확한 걸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 모양이다. 게다가 그것을 직접 조사해보기까지 했다.

고흐의 그림 중 '밤의 하얀집'이란 작품이 있다. 노랗게 빛나는 별 하나가 하늘에 떠 있고 두세 명의 여인들이 오가는 가운데 빨간색 지붕으로 덮인 하얀 집 한 채가 화면을 가득 메운 그림이다.

이 작품은 나치들의 강탈로 한동안 행방불명됐다가 1995년에야 비로소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전리품 예술전시회에 다시 등장했다.

이 그림은 1890년 6월 16일 고흐가 말년을 보낸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올슨 박사와 그 동료 러셀 도셔는 오베르를 답사하면서 그 마을에 있는 5천 가구를 모두 뒤진 결과그림에 나오는 집과 똑같이 생긴 하얀 집을 발견했다.

그들은 고흐가 어떤 방향에서 집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냈고, 작품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토대로 그것이 오후 늦게 그려졌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날 저녁 금성이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저녁 7시쯤 정확히 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흐는 1890년 6월 16일 저녁 7시에 금성이 반짝이고 있던 밤하늘 아래 하얀 집을 그렸던 것이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유명 천문잡지 '하늘과 망원경'에 발표됐다.

올슨 박사팀의 연구는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가를 잘 보여줬다.

고흐의 밤하늘이 넘치는 상상력과 격정적 이미지로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도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예리한 눈이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우리는 이 그림에서 프랑스 작은 마을 오베르의 해질녘, 홀로 빛나는 금성의 어스름한 별빛에서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한 화가의 영혼을 떠올리게 됐다.

안타깝게도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린 뒤 정확히 6주 후에 자살했다.

임경순 ·정재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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