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차세대 거장 예약 피아니스트 임동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줍은 표정으로 무대에 들어선 피아니스트 임동혁(17.사진) 군은 앳된 소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흰색 연주복도 호리호리하고 연약한 몸집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건반 앞에서 첫 화음을 연주하면서부터는 거장의 풍모마저 느껴졌다.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롱 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임군의 서울 데뷔무대였다. 그는 새해 첫날 만난 음악계의 '벅찬 희망'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김홍재 지휘의 코리안심포니와 호흡을 맞춘 임군은 체력으로 밀어부치는 파워의 과시로 끝나기 십상인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제1번에서 음악의 흐름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눈부신 음색과 정교한 리듬을 구사해 '스타 탄생'을 충분히 예감케했다.

지휘를 별로 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귀로 관현악의 흐름을 감지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긴밀한 앙상블을 과시했다. 또 템포 변화의 폭을 넓혀 작품의 깊이와 너비를 한층 더해주었다. 빠른 악구에서도 악상을 얼버무리지 않으면서도 박진감을 살려냈고 한발 앞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음표의 물결 속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신기(神技) 에 가까운 완벽한 테크닉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즉흥성을 가미해 들려준 서정적인 2악장에서는 로맨티스트의 개성을 한껏 발휘했다. 네 차례의 커튼콜 끝에 임군은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줬다.

옥에 티 하나. 이날 공연에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은 4악장만 연주하면서도 굳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줘 아쉬움을 남겼다.'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도 생략했더라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터. 이날 초청받은 인사들의 음악적 수준이라면 교향곡 하나쯤 인내심을 발휘해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