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와 결혼한 필리핀女 "살림 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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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까무잡잡한 피부에 크고 검은 눈을 가진 D씨(42)는 필리핀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다. 한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전북 군산. 하지만 1년 만에 인천으로 이사했다. 아무래도 수도권에 일자리가 많을 것 같아서다. 남편은 지금 목재소에 다닌다. D씨는 분식집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부부의 한 달 수입은 300만원 정도다. 한 살 터울인 아들(7)과 딸(6)까지 네 식구 생활비로 풍족한 편은 아니지만 D씨는 불만이 없다. “한국이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젠 제2의 고향이 됐다”고 한다. 다만 “예전보단 덜하지만 사람들이 내 뒤에서 수군대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한텐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문화가족의 소득 수준 등 생활 여건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26일 이 같은 내용의 ‘2012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다문화가족 1만5341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조사한 결과다. 2009년 1차 조사 이후 두 번째 조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일하는 여성 결혼이민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2009년 여성 결혼이민자의 고용률은 36.9%에 불과했다. 3년 만에 고용률이 16.1%포인트 올라갔다. 여성 결혼이민자의 절반 정도(53.0%)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남성 결혼이민자의 고용률도 74.3%에서 80.3%로 올랐다. 고용률이 올라가면서 월 평균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비율이 2009년 59.7%에서 2012년 41.9%로 17.8%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다문화가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조사 결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적이 있다’는 결혼이민자는 41.3%에 달했다. 3년 전엔 36.4%였다.

 이 같은 결과는 다문화사회가 정착되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기택 연구위원은 “이민자에 대한 초기 정착 지원이 고용률과 가정의 안정성, 소득 수준을 올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에 노출되는 위험 역시 높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문화 정책이 이민자 초기 적응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통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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