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지도자 취임사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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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국도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게 됐다. 박 대통령에 앞선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은 여성을 옥죄었던 유리벽을 하나씩 깼다. 그들은 남성 지도자보다 해결해야 할 난제를 적어도 하나씩은 더 품고 나라를 이끌었다. 여성 지도자들의 취임식과 취임 선서, 수락 연설에 이런 감격과 고충이 묻어난다.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재임 기간 1974~76)이다. 35세 연상이던 남편 후안 페론이 3선 임기 중 사망한 날 부통령이던 이사벨이 비밀리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취임식이나 취임사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을 보게 된 국민은 그에게 ‘라 프레시덴테’라는 별명을 붙였다. 대통령의 여성형 ‘프레시덴타’가 자연스럽지만, 법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규정이 없어 관사만 여성형으로 바꿔 불러 생긴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첫 선출 여성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2007~현재)는 취임사에서 스스로 ‘프레시덴타’라고 칭했고, 이후 정부와 언론은 ‘세뇨라 프레시덴타’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지금 대연립정권이 탄생해 그 꼭대기에 여성이 앉게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놀라움은 바로 ‘자유’입니다.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모든 것이 가로막혔었습니다. 나라가 영원히 분단되는 줄 알았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005~현재)의 취임사다.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2006~2010)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임기를 시작했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여성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설하는 날이 올 것을.” 국정 난제들을 열거하던 페르난데스도 취임 연설 끝부분에 “여성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 있을 수도 있다. 여성은 노동자·전문가·기업인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항상 남자들보다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 총리로 오랜 기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1979~90)의 수락 연설은 간결했다. 대처는 “여왕 폐하께서 새 행정부 구성을 명하셨고, 나는 수락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고 했다. 이어 성프란체스코의 유명한 기도문을 인용했다. “불화가 있는 곳에 일치를, 잘못이 있는 곳에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길 바란다.”

박소영·전영선 기자

◆ 주요 여성 지도자들 취임사 (괄호 안은 재임 기간)

-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1979~90년)

“불화가 있는 곳에 일치를, 잘못이 있는 곳에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길 바란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005년~현재)

“지금 대연립 정권이 탄생해 그 꼭대기에 여성이 앉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2007년~현재)

“여성은 노동자·전문가·기업인 등 뭐든지 될 수 있지만 항상 남자들보다 노력을 해야 한다.”

-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2006~2010년)

“내 임기 중 가장 단호한 방법으로 여성이 권익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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