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 대신 ‘태풍成大’ 동문 모임 건배사도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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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05면

#지난달 8일 서울 역삼동 GS타워 아모리스홀. ‘2013년 성균가족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동문 3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77학번·당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는 공로패를 받았다. 법대 동문회장인 그에게 “동문들의 단합과 우의 증진에 기여했다”는 찬사가 따랐다. 황 후보자에 앞서 법대 동문회장을 지낸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내정자(신방과 68학번)가 있었다. 그는 성대 출신 언론인 모임인 ‘성언회 회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성골’로 떠오른 성균관대의 힘

#지난달 말 성대 600주년 기념관. ‘성지회(성대 행정고시 동지회)’ 회원을 포함해 최근 고시에 합격한 14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행시 22회)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내정자도 행시 후배이고, 허태열 내정자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내정자도 모두 성지회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며 “성대 동창회는 서로 관계가 끈끈한 편이다. 가족같이 지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979년 5월 행시 합격자 모임으로 창립한 성지회는 2002년부터 외무고시, 기술고시 출신 등 공직자 동문 모임으로 확대돼 회원이 650명이다. 이 중 610명이 행시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내각과 청와대에 성균관대 출신 인사 7명이 진출하면서 성대 인맥에 정·관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계 인사들은 역대 정부에서 고위직 진출이 미약했던 성대 출신들의 약진에 대해 “당선인은 성대와 별 연고가 없지만 인재를 각각 뽑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성대 전성시대’는 충분히 예상돼 온 일”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을 뿐 이미 공직사회에선 성대 출신의 저변이 넓었다는 설명이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MB 정부 때도 한창 꽃필 시기를 맞은 관료 중엔 성대 출신이 많았는데 고려대 출신을 챙기는 바람에 성대 출신을 덜 쓴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당선인이 관료 출신을 선호하다 보니 감춰진 성대의 잠재력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서울대 낙방생들 모여 와신상담”
실제로 최근 관가에서 전성기를 맞았다는 행시 23회(79년) 합격자 248명 중 성대 출신은 25명이다. 각각 28명인 연세대·고려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80, 81, 86년에는 아예 성대가 행시 합격자 수에서 서울대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수석 합격자가 나오는 등 성적도 좋았다고 한다. 성대 출신의 야당 국회의원은 “성대는 (80년까지 후기대학이어서) 대부분 전기 때 서울대 등에서 낙방한 성적 우수자들이 몰렸다. 낙방의 쓴맛을 먼저 본 탓에 와신상담하면서 고시 공부에 더 매진했다”고 설명했다.
성대 출신은 정치권에도 상당하다. 19대 국회엔 역대 가장 많은 26명이 입성했다. 박근혜계 중에선 정우택 최고위원 외에 한선교(물리학·78학번) 의원, 송광호(경제학· 61학번) 의원 등이 있다. 박 당선인의 외곽 조직을 관리해 온 이성헌 전 의원은 언론학 박사를 성대에서 땄다. 이 전 의원은 그 인연으로 대선 때 박 당선인의 최대 외곽조직 ‘국민희망포럼’(회원 수 67만여 명)의 이사장으로 심윤종 전 성대 총장을 위촉하기도 했다.

동문들끼리 '가지치기 인사' 우려
성대의 약진엔 대학 측의 남다른 지원도 있었다고 성대 출신들은 말한다. 고시반을 70년대부터 일찌감치 운영했고, 86년부터는 아예 ‘양현관(養賢館)’을 지어 고시반인 ‘와룡헌(행시·외시 준비반)’ ‘사마헌(사시 준비반)’ 등을 지원해 왔다는 것이다. 96년부턴 삼성이 대학 운영을 맡으면서 전액 장학금 등을 통해 우수한 학생·교수를 유치하고 있다.

이 대학은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다닐 만한 대학원 과정을 운영해 ‘성대 인맥’의 확장에도 성공했다. 성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한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관리와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성대가 국정관리대학원을 만들어 다니게 됐다. 이 대학원엔 유민봉 교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교수진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유민봉 내정자 외에 박 당선인의 ‘정책 실세’로 불리는 안종범 의원도 재직했다. MB 정부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도 본래 성대 교수 출신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성대 석좌교수에 임명됐다.

리더 양성엔 동문들도 적극적이었다. 허태열 내정자가 회장을 지낸 성대 국회동문회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3억5000만원을 차세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동문 의원들이 매달 10만원씩 갹출해서다. 공무원 모임인 ‘성지회’도 후배 특강 등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러나 성대 인맥의 약진과 동문 문화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금융권과 경제계에선 성대 출신 ‘금융권 동문회’와 '성균경영인포럼 등이 들썩인다. 각 기관들이 실세들과 연줄이 있는 성대 출신들을 알아서 중용하는 ‘코드 맞추기’도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있다. 마침 황교안 후보자는 장관으로 지명되기 직전 총동창회보인 ‘성균회보’ 2월호에 기고한 ‘동창회론’에서 “사회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협력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동문”이라며 “여유 있을 때 기여하고 힘들 때 찾아오라”고 적었다.

게다가 정치권에선 정홍원 총리 후보자나 유민봉 내정자가 다른 동문들을 박 당선인에게 추천했을 거란 말이 돈다. 박 당선인의 인재 풀에 한계가 있는 만큼 꼭 자신이 써본 사람이 아니라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는 ‘가지치기식 인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유민봉 내정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직접 다 챙기는 박 당선인의 인선 스타일을 다들 알 텐데 그런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실장수석 내정자) 4명 중 2명은 발표 당일 처음 봤고, 허태열 내정자는 과거 조찬 모임에서 두 번 본 게 인연의 전부다. 인선 발표 뒤 만났을 때 서로들 ‘깜짝 놀랐다’고 했다”고 전했다. 허태열·모철민 내정자가 있는 ‘성지회’에 대해서도 “행정고시 출신이긴 하지만 난 일찍부터 교수로 일해 공무원 모임인 성지회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며 “모두 각자 열심히 일한 결과 우연히 많아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대 바깥의 질시를 우려해 자제령도 돌고 있다. 성대의 한 교직원은 “학교 당국에서 개인 의견도 조심해서 말하고 자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한 성대 출신 의원은 “국민들이 우리를 MB 정부의 고려대처럼 볼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총동창회 관계자는 “청와대에 들어간 이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2∼3개월 걸리니 너무 설치지 말고 표정관리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며 “축하 행사도 그때 가서나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술자리 건배사는 평소 하던 ‘태평성대’보다 더 강한 ‘폭풍성대’‘태풍성대’로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박 당선인은 힘이 쏠리는 걸 가만 놔두지 않는 사람인 만큼 MB의 고려대 인맥과 달리 봐야 한다”면서도 “특정 학교 출신들이 동문을 박 당선인에게 추천해 그 수를 늘리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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