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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와 손님이 교감하는 순간, 최고의 스시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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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맛은 밥에서 나온다. 국이나 반찬 맛이 아니라 밥 맛이 밥상의 중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시 맛의 성패도 밥이 가른다. 일본 도쿄 긴자에서 미슐랭 2스타 식당 ‘스시 가네사카’를 운영하고 있는 가네사카 신지(41) 셰프는 “스시의 생명은 샤리(스시의 밥 부분)”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식당 ‘스시 우오’에서 진행된 ‘미학(米學)-샤리의 재발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첫 방한했다. 그를 만나 스시의 진면목을 구현하기 위한 철학과 노하우를 물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어떤 밥이 ‘샤리’를 만들기 좋은 밥인가.

“파스타 면을 삶을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꼽는 ‘알덴테(al dente)’의 정반대 상태가 돼야 한다. ‘알덴테’는 겉은 부드럽지만 속에 약간 딱딱한 심이 씹히는 상태를 말한다. 샤리용 밥은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안에서 잘 퍼져야 한다. ‘역 알덴테’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밥의 찰기는 적은 게 좋다. 큰 솥에 절반 정도만 쌀을 안쳐 밥을 하고, 솥 바닥 쪽 밥은 샤리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눌려서 쌀알이 뭉개져 있기 때문이다. 쌀을 씻을 때도 쌀의 표면이 깨지지 않도록 살살 씻는다. 쌀을 너무 건조한 장소에서 보관해도 잘 깨지므로 습도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밥을 한 뒤에는 배합초를 섞어 맛을 낸 다음 보온밥솥에 넣어 보관한다. 스시가 입에 들어갈 때 샤리의 온도는 사람 체온 정도가 가장 좋다. 먹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온도여서다. 그 순간 그 온도가 되도록 맞추는 게 장인의 기술이다.”

-적당한 쌀을 고르는 작업도 중요할 텐데.

“2000년 식당 ‘스시 가네사카’ 문을 열기 전 쌀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밥을 지어보고 쌀을 골랐다. 쌀은 생선과 달리 그날그날 상태가 달라지는 재료가 아니어서 한번 연을 맺은 농가와 계속 거래하면 일정한 밥맛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식당이 어떤 쌀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영업 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 ‘스시의 80%는 샤리’라 할 만큼 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처음 한국쌀 맛을 볼 수 있었다. 일본쌀과 한국쌀은 찰기와 경도 등에서 차이가 크더라. 한국쌀이 일본음식인 스시에 그냥 척척 들어맞지는 않을 것 같다. ‘스시 우오’에서 ‘김포 고시히카리’ ‘DMZ 밀키퀸’ ‘전남 달맞이쌀’ ‘진주 동의보감’ 등 여러 종류의 쌀을 섞어 샤리용 밥을 짓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샤리 위에 얹는 생선회 ‘네타’에는 어떤 신경을 써야 하나.

“일단 좋은 생선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생선을 살 때 직감에 따라 한눈에 반한 생선을 산다. 스시를 만들 때 네타의 온도도 중요하다. 붉은색 네타보다 흰색 네타의 온도가 더 낮아야 한다. 마치 레드와인보다 화이트와인을 차게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스시를 만들 때 참치나 새우 등 붉은색 네타 재료는 냉장고에서 일찍 꺼내 둔다. 또 네타의 온도는 샤리의 온도보다 약간 낮아야 한다. 흰살 생선인 광어를 얹을 샤리의 온도가 붉은색 참치를 얹을 샤리의 온도보다 약간 더 낮아야 하는데, 그 차이가 참 미묘하다. 오직 장인의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스시 장인’으로서 그런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나는 지바현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풍족한 집안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고기 넣은 카레라이스를 먹겠다’는 생각을 하며 컸다. 스시 장인이 되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의 유명 스시집 ‘큐베이’에 들어갔다. 처음엔 아침부터 밤까지 청소만 했다. 1년이 지난 뒤부터 스시 쥐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따로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선배들이 스시 만드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가 식당 일이 다 끝난 뒤 혼자 남아 연습했다. 손님 앞에서 스시를 만들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스시 만드는 법은 셰프마다 다 다르다. 샤리를 둥글게 만들지, 삼각으로 할지, 사각으로 할지 등은 셰프가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예술의 영역이다. 그래서 스시 셰프에게는 예술적인 감각이 중요하다. 그 감각을 키우기 위해 가부키·발레·오페라·일본무용 등을 꾸준히 접하고 있다. 스시 셰프는 예술가인 동시에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손님 앞에서 스시를 만드는 동작 자체에도 즐거움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오른손으로 스시 모양을 만들 때 왼손은 어떤 동작을 하는 게 멋있는지도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

-고객 입장에서 스시를 맛있게 즐기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한가.

“담백한 맛에서 강한 맛의 순서로 먹는 게 기본이다. 지방이 적어 맛이 담백한 흰살 생선부터 먼저 먹는다. 만약 광어·참치·도미 스시가 있다면 같은 흰살 생선이라도 더 담백한 광어를 먼저 먹은 뒤 도미-참치의 순서로 먹는 게 좋다. 맛이 강한 조개나 장어 스시는 마지막에 먹는다. 또 스시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셰프 앞 카운터에 앉아 셰프가 만들어 주는 즉시 먹어야 한다. 스시는 완성된 순간부터 맛이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스시집에서 셰프 앞에 앉아 셰프와 교감하면서 스시를 먹는 것도 중요하다. 스시에 가장 중요한 조미료는 손에서 나오는 기(氣)다. 셰프가 손님의 얼굴을 보고 영감을 얻을 때 그 손님에게 가장 알맞은 ‘조미료’를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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