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는 미국 사회의 원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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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봉준호 등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감독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현한 할리우드의 악동 퀜틴 타란티노 감독. [사진 소니픽쳐스]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의 ‘장고’(1966)와 전혀 상관없는, 주인공 이름이 ‘장고’일 뿐인 영화가 약 40편 있습니다. 거기에 한 편을 더하게 돼서 기쁩니다.”

 15일 도쿄에서 만난 퀜틴 타란티노 감독(50)은 첫마디부터 ‘악동 감독’다운 면모를 뽐냈다.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개봉 3월 21일)를 완성한 그다.

 타란티노는 어려서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영화를 잡식하듯 섭렵하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피가 난무하는 범죄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로 데뷔한 뒤 ‘펄프 픽션’(94), ‘킬 빌’ 2부작(2003·2004),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 등 짜릿한 장르 영화를 계속 빚어왔다. 작품마다 각종 장르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58년을 배경으로 한 서부극.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의 ‘장고’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가져와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백인 현상금 수배범인 장고 역을 흑인배우 제이미 폭스에게 맡긴 것이 가장 큰 변화다.

 흑인노예 장고가 독일인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어 현상금 수배범으로 활약한 끝에 남부의 농장에 팔려간 연인 브룸힐다(케리 워싱턴)를 구하러 간다는 내용이다. 타란티노 특유의 현란한 액션과 감각적인 음악 안에 인종차별에 대한 통쾌한 비판정신이 흐른다.

 타란티노는 “미국은 노예제도를 올바로 처분하지 못했다. 그 점은 아직까지 미국의 원죄로 남아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의 열렬한 팬으로 잘 알려진 그는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심사위원대상을 수여한 바 있다. 그는 최근 할리우드에 진출한 세 명의 한국 감독, 김지운·박찬욱·봉준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20년 동안 본 영화 중에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을 가장 좋아합니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기대가 커요. 재능 있는 한국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서 어떤 영화를 만들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11년 전부터 뉴욕 웨스트빌리지에서 한국식당 ‘도하’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 나제니와 함께 식당을 같이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 ‘뉴욕 가족’인 셈이죠. 요리는 나제니의 할머니가 합니다. 그들이 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동업하기로 결정했어요.”

도쿄=장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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