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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한 것이 더한 것 … 볼수록 꽂히는 ‘심심한’ 세련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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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08면

사진 게티이미지, 스톡홀름 패션위크 조직위원회, H&M

북유럽 스칸디나비아가 대세는 대세다. 인테리어와 가구로 디자인계를 접수하더니 육아 방법까지 트렌드로 떠올랐다. 단순함·실용성·친환경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북유럽 감성’이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은 것이다.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아크네·J린드버그·필립파K·부룬스바자르 같은 브랜드는 이미 유명해진 북유럽 브랜드들이다. 뉴욕·파리 등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고 활약 중이다. 최근엔 기세를 몰아 카린 로데브예(Carine Rodebjer), 오드 몰리(Odd Molly), 자카리스 스마일(Zachary’s Smile) 등 낯선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들의 옷이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파리·뉴욕·런던·밀라노 브랜드에 열광하던 패션 피플들이 북유럽을 ‘신개척지’로 삼게 된 셈.
국내도 빠르게 그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중이다. 편집매장에서 발견되는 이름 모를 브랜드 상당수가 바로 스칸디나비안 디자이너들의 옷이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스웨덴에서 ‘스톡홀름 패션위크’가 열렸다(런웨이쇼 기준). 코펜하겐 패션위크와 더불어 북유럽 패션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세계 4대 패션위크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스칸디나비안 패션’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을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스칸디나비안 패션의 중심 ‘스톡홀름 패션위크’를 가다

북유럽 패션 관심 늘며 해외서 2만명 찾아
지난달 28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왕궁공원(Kungstrad garden). 18세기까지 왕실의 궁전공원이었던 이 광장에 거대한 흑백 텐트가 설치됐다. 사흘간 열리는 ‘스톡홀름 패션위크’의 주요 무대가 되는 가건물이었다. 주변으로 카페·레스토랑이 즐비한 도시 한복판이라 우리로 치자면 서울 광화문쯤 되는 곳에 행사장을 마련한 셈이다.
영하에 머문 날씨에 전 주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미끄러운 곳이 많았지만 행사장 주변은 긴 줄이 늘어섰다. 인디펜던트 같은 신문은 물론 엘르·그라치아 등 세계 유수 패션전문지 기자들과 네타 포르테, 리버티 등의 바이어들이 쇼장을 찾았다. 실내에서도 열기를 실감했다. 500여 석 자리는 꽉 찼고 서서 보는 관객들까지 더해져 쇼 시작이 30분씩 늦춰지기도 했다. 스웨덴 패션협회 매니저인 구닐라 그루브(Gunilla Grubb)는 “지난 3~4년 새 패션위크가 성장하면서 올해는 100명이 넘는 기자들을 포함해 2만여 명이 찾는 빅이벤트가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흥미로운 건 패션에 앞서 패션을 포장하는 방법부터 ‘실용’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4대 컬렉션들과 사뭇 달랐다. 주요 도시 패션위크에서 흔히 보는 초대 연예인, 파파라치 사진가 등이 거의 없어 ‘소박하다’ 싶었다. 그만큼 관객들은 쇼 자체에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드라이아이스나 인공눈 같은 극적인 무대 장식을 볼 수 없는 런웨이는 둘째 치고라도 외부에서 진행된 컬렉션의 경우엔 ‘여기에서 패션쇼를 할까’ 싶게 홍보물을 자제해 그 소박함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디어만큼은 빛났다. 공원의 아이스링크를 런웨이로 택해 모델 캣워크를 스케이팅으로 대신하고, 체육관의 축구 골대와 나무 벤치를 그대로 활용하는 무대가 대표적인 예였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에 독특한 컬러로 포인트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 스칸디나비안 패션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실제 쇼에서 이를 실감했다. 디자이너의 개성은 각기 달랐지만 키워드는 ‘절제’ 하나였다. 칼날 같이 매끄러운 실루엣,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컬러가 두드러졌다. 특히 진부함을 넘어서게 하는 디테일, 몸에 딱 맞는 재단, 소재의 다양성이 돋보였다. 그래서 거리에 당장 입고 나가도 될 만큼 웨어러블(wearable)했다. 현장에서 만난 유명 패션사진블로거인 이반 로딕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스칸디나비안 패션은 한 번 볼 때는 심심하다 싶지만 두 번째 보면 세련된 디테일을 눈치채게 되는 정교한 스타일이죠.”
그런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건 알테와이사오메(ALTEWAISAOME)였다. 나탈리아 알테바이와 란다 사오메가 2011년 만든 이 브랜드는 요즘 국내에서도 주목받는 스칸디나비아 브랜드 중 하나. 이번 쇼에서도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라인과 볼륨 있는 형태를 선보였다. ‘뉴욕의 다양성’에 영감을 받은 컬렉션은 쇄골과 팔꿈치 등에 절개를 넣는 식으로 답답함을 피하면서 검정 자수를 한두 줄씩 늘어놓는 세심함을 보였다. 또 짙은 녹색과 회색톤의 조합은 세련된 이미지를 유지시켰다.
신진 디자이너인 다그마(Dagmar)나 타이거 오브 스웨덴(Tiger of Sweden) 역시 몸에 착 맞는 재단을 강조하면서 넓은 소매, 니트와 조합한 모피 등으로 디테일을 살렸다. 또 깔끔한 라인을 고수해오던 와이레드(Whyred)도 이번 시즌 극도로 날렵한 슈트와 원피스를 선보이며 ‘몸에 가장 가까운 디자인’으로 승부했다.
깔끔한 디자인이 반복됐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건 컬러였다. 전체적으로 모노톤이 강세였지만 차별화된 포인트 컬러로 숨통을 틔웠다. 백(Back)의 경우 포인트 컬러에서 흔히 보는 단색들을 배제시키고 골드, 형광빛 노랑, 코발트 블루, 따뜻한 느낌의 갈색과 감색 등을 내세워 우아함을 강조했다. ‘도서관’을 모티브로 삼은 J린드버그는 실제 도서관에서 흔히 볼 법한 짙은 초록색을 이용하고, 짙은 자두색이나 누드 계열 크림색을 중간중간 배치했다. 캐린 웹스터(Carine Webster)는 이번 컬렉션의 제목을 아예 ‘색채로의 송가(an ode to colours)’로 정하면서, 파란색에 기반한 톤온톤으로 오묘한 컬러 조합을 만들어냈다.
데님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패셔너블한 진브랜드 칩 먼데이(Cheap Monday)는 이번엔 수작업으로 염색한 짙은 자두색, 먼지 덮인 회색 바지에 밝은 라임색을 짝짓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 옷 ‘디자인 민주주의’
스칸디나비안 패션이 이처럼 단순함·실용성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에 본사를 둔 SPA 브랜드 H&M의 수석 디자이너 앤 소피 요한손이 여기에 답했다. “북유럽 패션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요. 옷이 예뻐야 한다는 당위성만 있는 게 아니죠. 옷이란 누구나 살 수 있고 쉽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 말이죠. 자연스럽게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느낌보다는 쿨한 이미지를 지향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즉 적절한 가격을 유지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는 단순함과 기능성을 강조해 대량 생산을 지향한다는 얘기다. 사회적 소수에 대해 배려하는 북유럽의 민주주의적 사고가 인테리어·디자인·건축은 물론 패션에도 뿌리를 내린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스칸디나비안 패션의 인기를 두고 ‘패션 이데올로기의 변혁’ 혹은 ‘비엘리트주의 패션의 성공’ 등으로 해석이 확대되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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