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봄은 멀리 있어도 여기는 이미 봄 봄 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세종시 베어트리파크에 화려하게 핀 호주매화와 극락조화. 경기도 포천 허브아일랜드의 시마니아, 충남 아산 세계꽃식물원의 패션프루트, 허브아일랜드의 왁스플라워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양력 1월은 겨울이지만 농가월령이 시작되는 음력 1월은 절기상으로 봄이다. 해마다 2월 초 입춘(立春) 때면 아낙은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 먹었다. 입춘 절기에 먹는 음식이라 해서 그걸 ‘입춘절식’이라 불렀다.

 하지만 올해 입춘은 달랐다. 나물타령이 무색할 만큼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선 밤새 눈이 16㎝나 내렸다. 꽃은 음력에 맞춰 핀다는데, 올해는 설마저도 2월 10일이었다. 지난해보다 보름도 넘게 밀렸다.

 개나리는 언제 피려나,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 겨울이 가면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오랜 농경사회의 습관이 우리네 몸속에 인이 박여 있어서다. 새해 일출은 1월 1일에 보면서도 새해의 시작은 으레 봄이라고 믿는 것도 그런 연유인 듯하다.

 핏줄로 대물림된 시계는 음력에 길들여져 봄꽃이 펴야 기지개를 켤 참인데, 태양력에 맞춰진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고 저만치 내달려 간다. 이러다 정초를 다 놓치겠다 싶어 week&이 부랴부랴 먼저 봄마중을 나섰다.

 봄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눈 덮인 초야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수목원이며 식물원의 실내마저도 휑했다. 제법 규모가 크고 유명한 식물원은 겨우내 방문객이 적다고 부러 꽃 피는 시기까지 늦췄다. 오랫동안 눈발을 헤치고 쏘다니고서야 꽃이 만발한 온실 네 곳을 발견했다.

 온천 명소로만 알았던 충남 아산에선 사계절 친근한 꽃이 흐드러진 세계꽃식물원을 만났다. 사루비아를 뚝 떼어 꿀물을 맛봤다. ‘강냉이꽃’으로 불리는 카시아꽃은 고소한 팝콘 냄새가 났다. “겨우내 온실 하루 난방비만 200만원이에요. 그래도 꽃 보고 좋아하는 손님들 얼굴에 힘이 납니다.” 세계꽃식물원 남기중(57) 원장이 말했다.

 반달곰이 뛰어노는 세종시 베어트리파크 온실에는 1만 가지 비경이 숨어 있었다. 색이 선명한 열대꽃과 함께 돌과 괴목이 어우러졌다. 경기도 포천 허브아일랜드는 온실 안팎으로 허브 향이 진동했다. 색색의 허브 꽃은 향기만큼이나 달콤 쌉싸래한 사연을 품고 있었다. 초콜릿 향이 진한 보랏빛 헬리오트로프는 태양신 아폴론을 한결같이 사랑하다 죽은 님프의 환생이었다.

 건물 자체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창경궁 대온실은 화단마다 정겨운 시골 봄 풍경을 자아냈다. 1909년 일제가 세운 제국주의의 상흔은 어느덧 우리네 자생 꽃과 나무의 보금자리가 돼 있었다. 그곳에서, week&이 봄기운을 듬뿍 담아왔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