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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1위 아이돌, 빌보드 CEO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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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0년대 한국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토미 페이지. 지금은 미국 대중가요 최고 음악 잡지인 빌보드를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원더걸스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LA=김상진 LA 중앙일보 기자]

열여덟 나이에 팝계 아이돌 가수로 데뷔를 했다. 1990년 ‘아이 윌 비 유어 에브리싱(I’ll Be Your Everything)’이란 노래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했다. 그리고 23년이 흐른 현재, 그는 바로 그 빌보드의 발행인이 됐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전문지 빌보드의 수장이란 뜻이다.

 이 놀라운 변신의 주인공은 토미 페이지(42)다. 90년대 초 뉴키즈온더블록과 함께 한국에서도 ‘꽃미남 팝스타’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초콜릿 광고모델로까지 활약했던 가수다. 지난 20여 년간 음악 비즈니스의 거물로 우뚝 선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너무 늙어 날 기억해주는 한국팬들을 실망시킬까 걱정”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나.

 “대중 앞에 서진 않았지만 뮤직 비즈니스를 떠난 적은 없다. 95년 가수 활동을 접어두고 휴학 중이던 뉴욕대학(NYU)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 직후 워너 뮤직에 들어가 15년간 일했다. 조시 그로반·마이클 부블레·그린 데이·알라니스 모리셋 등의 성장과정을 도왔다. 2년 전 변해가는 트렌드에 맞춰 나도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빌보드로 건너갔다. 발행인으로 승진한 지는 1년 됐다.”

 -흔치 않은 변신이다.

 “고교 졸업 앨범에 ‘빌보드야, 내가 간다’라고 썼던 적이 있다. 그 꿈을 가수로서, 그리고 발행인으로서 두 번이나 이뤘다. 빌보드와 내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기분이다. 최근엔 빌보드 매거진을 새 단장해 제2의 창간을 했다.”

 -가끔은 무대가 그리울 텐데.

 “물론이다.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작년 봄에 티파니·너티 바이 네이처 등이 출연한 ‘백 투 더 80’s’쇼 무대에 잠깐 선 적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가끔 무대에 서고 싶다. 활동을 재개한 뉴키즈온더블록 친구들과도 종종 만나 그런 얘길 한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한국에 적어도 25번 이상은 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받았던 사랑 이야기를 하면 다 허풍인 줄 안다. 제주도에서 초콜릿 광고를 찍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노래 ‘아임 폴링 인 러브(I’m Falling In Love)’를 커버했던 한국 여가수(하수빈)도 기억난다. 한국은 늘 내 마음속 특별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설도 있었다.

 “증조할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버지가 늘 우리 가족에게 한국 혈통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처음 한국에 가서 기자회견을 할 때 별 흥미를 보이지 않더니 내게 한국 혈통이 섞여 있다는 말을 듣고는 다들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해댔던 기억이 난다.”

 -K팝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나.

 “전 세계 사람이 다 아는 싸이가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원더걸스의 ‘라이크 머니’란 노래를 참 좋아한다. 지난해에는 빌보드가 주최하는 연례 컨퍼런스에서 최초로 K팝 세션이 열리기도 했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얼마나 훌륭한 아티스트가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더 많은 한국 팝스타들이 나와야 한다. 함께 계속 노력하자.”

 -앞으로의 계획은.

 “늘 뮤직 비즈니스계에서 머물 것이다. 종종 노래도 하고 곡도 쓰고 싶다. 아티스트로서의 내 경험이 후배 가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 한국 팬들과도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

이경민 LA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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