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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직은 평생직일까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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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밝힌 사임 이유는 고령으로 인한 기력 쇠퇴였다. 종신 임기인 교황의 결정에 대해 충격과 현명한 용단이라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는 가운데 초고령 사회의 종신직에 대한 평가도 다시 내려지는 분위기다.

 AP통신은 12일 ‘종신직이 항상 평생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기사에서 “놀라운 것은 교황의 사임이 아니라 교황과 비슷한 나이인 다른 지도자들이 사임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를 인용해 “교황은 매우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이라며 “고령에는 스스로도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황과 마찬가지로 종신 임기가 보장되는 미국 대법관 가운데 1955년 이후 실제로 사망 시까지 직위를 유지한 경우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뿐이었다. 2010년 90세의 나이로 퇴임을 결정한 존 폴 스티븐스를 비롯해 21명은 임기 도중 사퇴했다.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75) 여왕은 지난달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겠다”며 양위를 선언했다. AP는 “길어진 평균 수명이 종신직에 있는 이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며 “직위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서 기력 쇠퇴로 고생하느니 차라리 사임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 상원의원의 경우 선출직이기는 하지만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수차례씩 재선에 성공해 사실상 종신직처럼 직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상원의원 가운데 5분의 1이 70세 이상이라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이런 상원에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고령을 이유로 출마를 포기하고 은퇴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22년 동안 하와이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원로 대니얼 아카카가 88세의 나이로 정계를 떠나기로 결심해 주목을 받았다.

 고령으로 고민에 직면한 것은 정계뿐만이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교황의 사임 발표를 계기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83), 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82), 트라신다의 커크 커코리언(96) 등 고령 비즈니스 리더들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고 전했다.

 의학계에선 인지·신체 능력의 저하가 통상 80세 중반부터 급속도로 진행된다고 보고 있다. 2011년 미국 인구통계 조사(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 85~89세 인구의 70%는 노령화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에 거주하는 8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영양 및 생활습관 개선 등을 통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노년층이 많기 때문에 이전의 고령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뉴캐슬 대학의 노화보건연구소장 톰 커크우드는 “85세가 ‘늙은’ 나이라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엔 용납되지 않는다”며 “고령화된 산업에서도 리더십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스턴대의 토머스 펄스 박사 역시 “16~17세기에도 80대에 직무를 수행한 교황들이 있었는데, 이는 요즘으로 치면 100세에 가까운 연령”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세계 지도자 중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87) 여왕,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8) 국왕 등이 있다.

유지혜·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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