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41년 만에 최고인민회의 연기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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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이달 초 최고인민회의(국회)를 돌연 연기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권력이상설까지 나돌게 한 회의 무산 배경은 뜻밖에도 평양에 밀어닥친 조류독감 사태. 통일부 당국자는 29일 "첩보를 종합할 때 조류독감 때문이라는 게 정보 당국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대북 정보망에 북한의 이상 징후가 감지된 것은 2월 말. '평양 닭공장(양계장)에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는 첩보가 중국 쪽 채널을 통해 입수됐다. 북한 방송도 '전 세계에 조류독감이 휩쓸고 있다'는 보도를 부쩍 늘리자 당국은 심증을 굳혔다.

며칠 뒤인 4일 북한 방송은 당초 9일 평양에서 열려던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1964년 한.일 협정 문제로 연기한 이후 처음인 이례적 조치였지만 '대의원의 요청 때문'이라는 설명이 전부였다. 당국자는 "600명이 넘는 전국 대의원을 평양에 집결시킬 경우 조류독감이 급격히 확산될 게 뻔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기 중 대의원들은 평양 인근의 닭공장이나 협동농장.발전소 등을 견학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즉각 북한을 '조류독감 의심지역'으로 설정하고 은밀히 국내유입 차단작전에 들어갔다. 11일 첫 반입 예정이던 북한산 닭고기 40t의 반입이 중단됐다. 이튿날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오가는 출입사무소에 검역이 강화됐다.

15일엔 대북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한은 이틀 뒤 "그런 일이 없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열흘 만인 27일 중앙통신으로 발생 사실을 털어놨다. 매몰한 닭을 주민들이 파내 먹었다거나 이미 지방으로 확산됐다는 설까지 나돌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관리와 현지지도 일정에도 비상이 걸렸을 것으로 당국은 판단한다. 김 위원장은 2000년 11월 군이 지은 닭공장을 첫 시찰한 것을 포함해 모두 10여 차례 닭.오리공장을 찾을 정도로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다음달 15일 김일성 생일행사도 해외 예술단 초청이나 내부행사 축소 등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29일 대북 전통문을 보내 방역지원 의사를 전하고 관련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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