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들고 은행간 50대, "즉시연금 매진" 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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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석촌동에 사는 임모(58)씨는 7일 거래 은행을 찾아 10년 만기 비과세 조건의 일시납 저축보험에 30억원을 넣었다. 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는 15일 이전에만 상속형 즉시연금과 일시납 저축보험의 무제한 비과세가 허용된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일시납 저축보험은 목돈을 한꺼번에 넣고 10~20년 뒤의 만기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찾는 상품이다. 매달 이자를 나눠 받고 원금은 배우자나 자녀에게 상속하는 상속형 즉시연금과 다르다. 임씨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금융소득 2000만원 이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상품에 가입했다. “즉시연금이 다 팔리고 없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일시납 저축보험에 돈을 넣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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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리치(Super Rich,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의 막바지 절세 열풍이 즉시연금에서 일시납 저축보험으로 옮겨 붙었다. 대형보험사의 즉시연금이 일찌감치 판매한도를 채우고 절판되자 비과세 혜택이 있는 또 다른 상품인 일시납 저축보험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15일 세법 개정안 시행령이 공포되면 즉시연금과 일시납 저축보험 모두 2억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11일 삼성생명·한화생명·동양생명에 따르면 이들 3개 보험사에 지난달 들어온 일시납 저축보험료는 모두 7777억원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기간(2171억원)의 3.6배다. 일시납 저축보험은 지난해 8월 세법개정안 발표 때 가입자가 크게 늘어난 뒤 주춤했지만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급증하고 있다. 김기홍 한화생명 강남 FA(파이낸셜 어드바이저)센터장은 “즉시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즉시연금이 있더라도 세금을 더 절약할 목적으로 일시납 저축보험을 찾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시납 저축보험의 주고객은 수퍼리치 중에서도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다. 매달 고정 수입이 있는 사업가나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주로 든다. 목돈을 맡겨 놓고 최소 10년 뒤에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찾아야 하기에 안정적인 현금수입이 있는 계층이 주로 가입한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수익률은 높다. 최소 10년간 쌓인 수익을 세금 없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상품의 금리를 의미하는 공시이율도 연 4%대로 3.4% 수준인 은행 예금보다 훨씬 높다. 즉시연금에 견줘도 공시이율이 소폭(0.1~0.2%포인트) 높다. 경험생명표의 수명이 반영되는 연금상품인 즉시연금과 달리 평균수명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상품은 수수료가 원금의 3.5%가량 된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장은 “수수료를 내더라도 세금을 떼지 않기 때문에 공시이율 4.1%를 적용했을 때 10억원을 10년 만기로 가입하면 4억원가량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시연금 이삭줍기도 계속되고 있다. 판매한도를 다 채우지 않은 중소형 보험사에 1인당 1억~2억원의 중산층 자금이 몰리고 있다. 김기홍 센터장은 “이 정도 금액은 15일 이후에 가입해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가입이 늘고 있다”며 “증세 기조가 앞으로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단 빨리 가입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듯하다”고 해석했다.

 즉시연금과 일시납 저축보험에 대한 쏠림현상이 과도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박승안 우리은행 WM사업부장은 “가입자나 보험사 양쪽에 모두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입자 입장에서 10년간 한 상품에 목돈을 묻어두면 자산배분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들도 저금리 기조 속에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지 못하면 가입자에게 줄 이자 부담 때문에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태경 기자

◆일시납 저축보험

매달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내는 게 아니라, 거액을 한 번에 납입하고 10~20년 거치한 뒤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상품이다. 이달 15일 이전에 가입하면 금액에 상관없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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