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센카쿠 1월 강공, 클린턴이 자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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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외무장관 회담을 마친 클린턴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지난달 19일과 30일 중국 군함이 일본 자위대의 헬기·호위함에 사격관제용 레이더를 직접 조준하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TV아사히는 6일 “단순히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양국 문제가 아니라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중국해 레이더 조준’ 사건은 그동안 비교적 중립적 입장을 보이던 미국 정부가 확실하게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나선 데 중국이 거세게 반발한 일종의 ‘보복 조치’란 설명이다.

 지난달 18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미·일 외무장관회담을 마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 깜짝 발언을 했다.

 “우리(미국과 일본)는 이들(센카쿠 열도)이 일본의 통치 하에 있음에 동의한다. 그 (일본의) 통치권을 일방적으로 해치는 어떠한 행위에도 반대한다(We oppose any unilateral actions).”

 미 정부는 그동안 센카쿠 열도가 누구 영토인지에 대해 중립을 지켜왔다. 다만 미국은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대상이기 때문에 방어 의무가 있음을 재차 강조해 왔다. 군사충돌이 벌어지면 미군이 출동해 일 자위대와 공동 대처한다는 내용이다. 논리는 이랬다.

 “센카쿠 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며 일본의 통치하에 두고 있다”→“미·일 안보조약은 ‘일본의 통치 하에 있는 영역’에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센카쿠 열도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만약 일본의 센카쿠 열도에 대한 실효지배(통치권)가 붕괴될 경우 이 지역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내부적으로 끙끙 앓고 있던 것도 이 대목이었다. 거꾸로 중국은 이 틈을 노려 계속 견제를 가해 왔다.

 그런데 클린턴은 퇴임 직전 일 정부에 큰 선물을 남겼다. (일본의) 통치권을 일방적으로 해치는 어떠한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유례없는 표현을 썼다. 바꿔 말하면 “센카쿠 열도의 실효지배를 중국이 힘으로 빼앗으려 해도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상황이 전개된다고 해도 미국은 미·일 안보조약을 센카쿠 열도에 적용한다”는 의지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는 사실상 일본에 의한 센카쿠 열도의 영구지배를 인정한 것”이라며 “미국은 센카쿠 열도가 어느 쪽 영토인지에 대해선 계속 중립을 관철하겠지만 클린턴 발언에 의해 ‘조약 영구 적용’으로 일본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동중국해를 비행하던 미국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에 전투기 젠(殲)-10 2대를 띄워 자극하고, 일 자위대 소속 헬기에 사격관제용 레이더를 2~3분간 조준한 것은 공교롭게도 클린턴 장관의 발언이 전해진(19일 새벽) 당일이었다.

 하루 뒤인 지난달 20일에는 중국 외교부의 친강(秦剛) 수석대변인이 담화를 발표해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같은 사태에 일본은 신중을 기했다. 사실관계 공표도 지난 5일이 돼서야 했다. 공표 주체도 총리 관저가 아닌 방위성이었다.

 일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클린턴이 일본의 손을 확 들어준 것은 ‘우리가 이 정도 (일본을) 배려했으니 해당 지역에서 절대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이 신중을 기해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며 “사태 공표 과정에서 신중을 기한 것도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또 중국 측에 “지난해 이후 단절돼 있는 일·중 간 ‘핫라인’ 설치 논의를 재개하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달 21일께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에 대한 양국의 공동대응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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