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당선인의 리더십, 인사로 보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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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새 정부의 얼굴은 백지 상태다. 국무총리부터 각 부처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에 이르기까지 주요 포스트의 인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거 정부에 비해 진도가 늦다.

 국민들은 궁금해 하다 못해 불안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불안감은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몇몇 여론조사 결과 박 당선인의 지지율은 60% 부근에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일부 조사에선 5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고도 한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직전 지지율은 80%가 넘었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인도 박 당선인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 당선인이 대선 이후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화근이다. 통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강성 인물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앉힐 때부터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어 한 인수위원이 아무 설명 없이 전격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고르고 골랐다는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후속 인사가 줄줄이 차질을 빚고 만 것이다. 그 틈에 정부 조직개편에 불만을 품은 일부 관료는 곳곳에서 조직적인 저항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균열 현상이 번지면 결국 리더십이 기능부전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이 빨리 부식됐던 것도 초기의 인사 난맥 탓 아니었나.

 근본 원인은 준비 부족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은 줄곧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적어도 인사에 대해선 준비 부족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선거 전부터 선진국처럼 섀도 캐비닛을 갖춰 미리 검증하는 건 우리 정치 현실에선 어렵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새 정부 인사 구상을 한다면 ‘선거 다 이긴 것처럼 행세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당선인은 머릿속에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 진용을 미리 짜둬야 했다.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면 뒤늦게라도 두루 지혜를 모아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최측근 몇몇과 함께 수소문했으니 제대로 된 사전검증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인사 때마다 밀봉인사다, 불통인사다 하며 말이 많았다. 이런 기본적인 리더십의 소통 문제는 아직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인사는 당선인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또 인사야말로 리더십의 상징이자 고도의 통치행위다. 정치철학이나 신념을 백 번 말하는 것보다 국민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사로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박 당선인은 어제 경북 지역 의원간담회에서 총리·비서실장의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곧 할 겁니다”라고 답했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는 게 아니다. 결과가 좋아야 한다. 박 당선인의 진정한 리더십은 인사로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