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못지않은 실력, 현인아·권이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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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현인아(左), 권이삭(右)

자폐증과 싸워 이긴 템플 그랜딘(66·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동물학과 교수는 “모자란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네 살까지 전혀 말을 하지 못했던 그는 말 대신 그림으로 생각을 펼치는 재주를 발견했다. 남들과 달랐기에 훗날 비(非)학대적 가축시설을 설계할 수 있었다. 그랜딘 교수의 스토리는 2010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동계스페셜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에서도 작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쇼트트랙 2관왕을 차지한 현인아(14)도 비장애인 못지않은 기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일 강릉실내빙상장에서 열린 500m 디비전8 결승에서 현인아는 53초48에 골인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두를 달린 끝에 우승했다. 물론 엘리트 선수의 세계기록(42초609·왕멍)보다는 10초 이상 뒤졌지만 그녀의 질주엔 숫자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현인아는 2일 열린 777m 경기에서도 1분25초17로 정상에 올랐다.

 경기장면을 지켜본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전이경(37)은 “쇼트트랙은 기록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현인아의 수준을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그러나 안정적인 자세와 스피드·폭발력은 비장애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며 “14세에 500m를 53초대에 끊었다면 대단한 수준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플로어하키 반비팀의 권이삭(16)도 비범한 재능을 뽐내고 있다. 현란한 개인기로 플로어를 누비는 모습이 군계일학이다. 경기를 지켜본 대회 관계자는 “혼자 5명의 선수를 모두 따돌리고 득점을 하더라. 혼을 쏙 빼놓은 명장면이었다”고 감탄했다. 반비팀의 송원우 감독은 “이삭이는 운동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웬만한 비장애인보다 기량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이삭은 3일 알제리와 결선리그 네 번째 경기에서도 두 골을 넣으며 4-2 승리를 이끌었다. 권이삭의 활약으로 반비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스페셜올림픽은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1921~2009)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J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인 슈라이버는 지적장애인들이 스포츠 분야에서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1968년 1회 시카고 대회를 개최하는 데 앞장섰다. 평창에서도 슈라이버가 꿈꿨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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