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검찰총장도 ‘밀봉 인선’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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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 02면

정권 교체기에 새로 임명될 차기 검찰총장에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유력한 모양이다. 안 재판관이 후보자 검증에 필요한 신상조회에 동의한 배경엔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의 설득이 작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안 재판관이 현직임을 들어 신상조회 동의를 거부하자 정 수석이 직접 안 재판관을 설득해 동의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는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 차기 검찰총장 인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인수위 사이의 역학구도로 볼 때 정 수석의 안 재판관 ‘등판 종용’에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 검찰총장이 박근혜 정부의 첫 총장인 데다 안 재판관이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인연이 깊어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인수위원장이 헌재소장에 재임할 때 안 재판관은 헌재에 파견된 검사였고, 안 재판관이 대검 공안기획관일 때 김 위원장을 대검 공안자문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전직 검찰 간부 중에선 안 재판관이 유일하게 인사 검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재판관의 발탁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다.
우려되는 점은 현직 재판관이 곧바로 검찰총장으로 옮겨갈 경우 헌법 해석의 최고기관인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과 위상은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3권분립을 천명한 헌법 취지와도 배치된다. 법무부는 현재 공석인 검찰총장의 후임을 찾기 위해 후보 추천위를 구성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 아래 2011년 9월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른 첫 구성이다. 추천위가 3명 이상을 추려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장관은 그중 1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는 총장 인선 때 청와대 등 권력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검찰 독립은 총장 임명 과정의 투명성과 자율성 없이는 기대하기 힘들다. 정권이나 특정 정파에 의해 발탁된 검찰총장이 해당 그룹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서서 현재 재판관을 총장 후보로 밀고 있다면 이는 검찰 독립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후보 추천위라는 공식 기구를 무력화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내건 검찰 독립권 보장 공약과도 배치된다. 국민들의 시선이 헌재소장과 국무총리 후보자의 적격 논란에 쏠려 있는 사이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밀실에서 특정인을 총장으로 옹립하려는 시도는 중지돼야 한다. 임기 6년의 헌재 재판관이 보임 5개월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검찰총장이 된다면 이는 헌재를 위해서도, 검찰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에게도 공조직을 들러리로 세운 채 극소수 권력 측근들이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하는 이런 인사는 백해무익하다. 당선인의 불통 이미지만 증폭시키고 헌법기관의 권위만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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