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신협 연대보증 단계적 폐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개인사업자 한모(45)씨는 지난해 2월 저축은행 대출을 받으며 어머니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웠다. 서울 도화동의 5억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4억8000만원을 빌렸지만 저축은행이 연대보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사업이 어려워진 한씨가 이자를 연체하자 저축은행은 곧바로 어머니 소유의 집을 가압류했다. 한씨의 민원을 받은 금융감독원은 “담보가치가 충분하니 어머니한테 연대보증 책임을 지운 것은 과도하다”며 연대보증을 풀라고 저축은행에 지시했다.

 앞으로는 한씨 같은 피해 사례가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 만연한 연대보증을 없애기 위한 실무 절차에 착수해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패자부활을 막는 연대보증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금융위원회는 31일 서울 태평로 금융위에서 저축은행·상호금융·보험·카드 등 2금융권을 대표하는 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비공개로 연대보증 폐지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는 각 업계 여신담당자들과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2금융권 연대보증 실태를 파악하고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할 방침을 밝혔다. 각 업계는 TF 로드맵에 따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연대보증 폐지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이 담보대출 때 끼워 넣는 연대보증을 우선 폐지 대상으로 꼽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저축은행·상호금융이 담보대출을 할 때 담보가치가 충분한데도 연대보증을 세우는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저축은행 총 대출액 40조4000억원 중 절반 가까운 19조1092억원에 연대보증이 끼어 있다. 신협·단위농협·수협·산림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에선 185조원의 대출액 중 3조7000억원(2%)으로 연대보증 비율이 적다.

 업계는 우선 개인 고객의 신규 대출부터 연대보증을 없애 나갈 계획이다. 신호선 저축은행중앙회 팀장은 “개인 대출은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따라 신규 대출부터 순차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그러나 연대보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2금융권에는 신용등급 6등급 이하 대출자가 많아 연대보증을 갑자기 없앨 경우 저신용자 대출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충분한 대안을 만든 후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기업 대출에서 연대보증을 없애면 기업 부도 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대보증은 2008년 없어졌다. 지난해 5월부터는 시중은행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이 개인기업(자영업자)의 연대보증제도를 없앴다. 다만 법인으로 등록된 기업의 경우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은행이 대주주·대표이사 등 실제 경영자에 대해 연대보증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금융위와 기획재정부·농림수산식품부·행정안전부·금융감독원은 이날 1차 상호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다음 달부터 ‘상호금융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해 부실 여부를 집중 감시하기로 했다. 최근 상호금융에 뭉칫돈이 몰렸지만 대출 수요 부족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상호금융의 지난해 말 총 수신액은 378조1000억원으로 4년 전보다 약 50% 늘어났지만 총 여신액은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권대영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자금을 고위험 자산에 운용하는 조합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잠재 부실을 막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연대보증 일반 ‘보증’은 돈을 빌린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을 때만 대신 갚을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연대보증을 하면 이보다 강한 의무를 진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채무자가 상환 능력이 있건 없건, 채무자 본인을 제쳐놓고 연대보증인에게 바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금융회사로서는 채무자와 실랑이를 할 필요 없이 능력 있는 연대보증인에게 바로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대출을 할 때 연대보증을 많이 요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