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안한 에너지 구조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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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욕의 시티그룹 본부건물에서 있은 워크숍에서 미국의 주요 에너지회사.법률회사 등이 한국의 에너지산업에 대해 발표하는 내용을 경청하고 또 토론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불안이 더욱 커진 것이다.

*** 美선 전력공급 차질 빚어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해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또 전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에 관한 법률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기간에 걸친 한전과 가스공사의 독점적 지위로 인한 문제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두 산업의 우리경제에 대한 너무나 심각한 영향력 때문에 지금 추진 중인 구조개편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199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주의 전력산업을 구조개편해 경쟁체제를 처음 도입 했을 때만 해도 지난해 여름과 같은 장기간의 전력공급 불능 상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력가격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판단하고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구조개혁으로 인해 약 반년에 걸친 전력공급의 불안상태를 초래했고 그동안 주에 전력을 공급하던 3개 회사는 현재 약 1백30억달러(약 17조원) 의 부채를 지고 있고, 그 중 한 회사는 지난 4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또 하락할 줄 알았던 전력의 도매시장 가격은 1999~2001년 초 사이에 약 7배가 상승했다.

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수사를 개시했고 3개의 전력공급회사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는 상태다. 부득이 종래 현물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공급하던 전 물량을 주정부가 직접 공급하게 됨으로써 이제 겨우 치솟던 가격이 안정되고 전력공급의 중단상태가 해소되었으나 당초 구조개편시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되어 버렸다.

한국전력산업의 구조개편시 대체로 다음의 경우가 예상된다. 첫째, 현재의 한전 발전 자(子)회사를 매수 할 국내외의 대기업은 당연히 경쟁을 통해 가격을 인하시켜야 할 것이나 실제로는 현재의 우리나라 정유업계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상의 가격담합이 이루어져 오히려 소비자가격이 지금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만일 정부가 소비자가격의 상한선을 낮은 수준에서 묶어둔다면 민간 발전회사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본 것처럼 발전량을 삭감해 공급물량을 줄임으로써 전력공급의 부족 내지 중단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한전 자회사를 인수할 국내외의 기업들은 현재의 한전 투자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 보장을 발전자회사 구매입찰시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정부가 거절하는 경우,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불경기와 국내기업의 자금경색 때문에 대규모 전력회사를 인수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국내외 기업들의 수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또한 우려된다.

발전소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과 설계에서부터 준공까지 3~8년이 걸리는 자본의 회임기간을 감안할 때 상당한 수익률의 전망 없이는 한전의 자회사 인수를 위한 경쟁입찰에 참여하는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며 이 경우 자칫하면 귀중한 전력회사를 헐값에 팔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입찰 참여회사 많지 않아

국회에 계류 중인 가스공사의 구조개혁법안이 통과돼 몇개의 자회사로 분할되는 경우, 현재 세계 최대 가스도입회사로서 동사(同社)가 누리는 가스도입 협상시의 이점은 없어지게 된다.

또 가스 수요가 지금까지처럼 급속히 늘어날 때 앞으로 가스회사를 인수하게 될 국내외의 기업이 공급물량의 확대로 가격인하와 자신의 수익률 저하를 초래할 수도 있는 저장시설, 또는 가스관의 시설 확장에 과연 얼마나 성의있게 투자할지 적지않은 의문이 생긴다.

전력이나 가스는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의 핵이다. 따라서 동 산업의 구조개편에는 사실상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 여유가 없다.

文熙和 콜럼비아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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