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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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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장원

발톱 깎는 아내   - 이기선

발톱 깎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고양이다

금세라도 튀어 오를 듯 웅크린 등허리

발톱을 응시하는 눈빛

오금이 저리다

쥐를 어루듯이 발가락 만지다가

손톱깎기 이빨로 발톱을 악문다

또가닥!

도망치는 발톱

재빠르게 덮친다

◆이기선=1953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대학원 졸업, 충북대 초빙교수

차상

겨울 간이역   - 최승관

새파란 하늘빛에 물들은 매운바람

굶주린 솔개 따라 허공을 맴돌다가

지나친 열차 끝자락 매달린 채 떠난다.

언 가슴 닫아걸고 몇 날을 아파했나.

빗장을 두드리는 애달픈 기적소리

생채기 아물지 않고 얼어붙은 플랫폼

잔설이 흩날려간 침목의 마른기침

긴 한숨 끌고 떠난 희망을 바라보며

홀로 된 설움에 겨워 전기줄도 울었다.

차하

청동소녀  - 김별

소녀는 청동 옷 입고 그날처럼 앉아있다

치욕의 강점기를 움켜쥔 손아귀에서

순결을 난도질당한 상흔들이 새나온다

가슴에 피어나던 목화꽃이 시들고

홍안이 일그러져 주름만 무성해진

할머니 세월을 애써 돌려놓은 저 자리

열도를 통째 준대도 바꿀 수 없는 청춘

금보다 귀한 사죄 한마디가 듣고 싶어

무거운 세월을 이고 들먹이는 저 어깨

누군가 옆에 놓아준 샛노란 신발 안에

기도의 눈물 넘쳐 동해로 흘러간다

슬픔을 나누어 가져도 슬픔뿐인 청동소녀

[이 달의 심사평] 웅크려 발톱 깎는 아내를 고양이에 비유한 활달함

시조는 시다. 시로 읽어서 감동이 있어야 좋은 시조다. 시조 고유의 정형률도 감동과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한 창작이 배태된다. 응모작 대부분이 형식에 얽매여 시를 잃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형식에 지배당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상력의 한계와 직면하게 된다.

시조는 3장 6구 속에 던지고 풀고 맺는 일정한 가락과 긴장감이 중요하다. 이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치열한 습작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다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시적 대상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도 좋은 시조 창작을 위한 조건이다.

이기선의 ‘발톱 깎는 아내’를 이 달의 장원으로 민다. 웅크린 아내의 모습을 쥐를 노리는 고양이에 비유한 것이 눈길을 끈다. 보법의 활달함도 좋고 둘째 수 종장을 빚는 솜씨에도 신뢰가 간다. 함께 보낸 작품 또한 기대를 갖게 한다.

차상은 최승관의 ‘겨울 간이역’이다. 안정된 보법이 장점이지만 ‘홀로된 설움’이란 상투적인 등식으로 귀결 지운 것이 아쉽다. 스스로 의식을 가두지 않는다면 더 좋은 작품을 낳을 수 있으리라. 차하는 김별의 ‘청동소녀’다. 청동소녀상을 통해 아픈 역사를 찾아가는 통찰력에 점수를 준다. 지나친 목적성과 생경함을 극복한다면 더 나은 작품이 되었으리라 싶다.

최재호의 ‘빛의 관절’, 김종구의 ‘에너지, 에너지’, 김정수의 ‘세탁소 여씨’ 등도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한 작품들이다. 모두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강현덕·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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