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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 차 꾸미는데 3억 쓴 30대男, 현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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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억원어치 튜닝 용품이 달린 차입니다.”

 포르셰 터보 차량을 운전하는 정명식(39·사업·대구시 남구)씨의 말이다. 600마력인 정씨의 차는 독일 ‘테크아트’ 튜닝용품이 잔뜩 장착돼 있다. 이른바 ‘풀 튜닝’을 했기 때문이다. 휠을 800만원짜리 포르셰 전용 테크아트 19인치로 바꿨고, 범퍼는 300만원을 들여 에어로파츠를 장착했다. 서스펜션(통칭 쇼바)은 높이 조절이 10단계로 가능한 독일 빌스테인제(350만원)로 바꾸고, 세라믹 브레이크(1200만원)와 터빈(2000만원) 등을 달았다. 트렁크도 카본 재질로 바꿨다. 그의 차는 시속 300㎞를 가뿐하게 달릴 수 있다. 차값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거액을 튜닝에 투자한 결과다.

정씨의 튜닝 이력은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쏘나타 차량에 3000만원을 들여 처음 튜닝을 했고, 이어 아반떼·티뷰론 등 차를 새로 살 때마다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년간 튜닝비로 3억원 넘게 썼지만 남들과 다른 차를 탄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20대 때는 튜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금도 개인사업을 하며 버는 돈의 상당부분은 자동차에 쓴다. 정씨는 “튜닝은 술·담배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튜닝(tuning)은 원래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조율’하고 ‘조절’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자동차를 자신의 의지대로 꾸민다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튜닝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20~30대 젊은층이다.

대구시 남구 남산동 자동차부품 골목엔 길 양옆으로 400여m를 따라 70여 개 튜닝 관련 업체가 몰려 있다. 한 가게 앞에 세워진 은색 BMW 3시리즈 차량에는 지름 10cm는 족히 돼 보이는 머플러 4개가 달려 있다. 앞 범퍼와 땅바닥과의 높이 차이는 담뱃갑 높이(8㎝) 정도였다. 서스펜션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차주 김모(37)씨는 “156마력을 내는 1995cc 엔진에 흡·배기 튜닝을 해 5마력 이상 출력을 끌어올렸다”며 “차체가 낮아지면 보기에도 좋고 코너를 돌 때 실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튜닝비로 1000여만원을 썼다.

 자동차 튜닝은 외관을 꾸미는 외형 튜닝과 차량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성능 튜닝으로 나뉜다. 성능 튜닝은 다시 터보 튜닝과 흡배기 튜닝으로 나뉜다. 터보 튜닝은 일반 엔진에 바람개비 모양의 터빈 장치(야구공 2~3개 크기)를 장착해 출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172마력 엔진이 달린 쏘나타를 터보로 튜닝하면 250마력 이상 낼 수 있다. 배기 튜닝은 공기를 빨아들이는 엔진 필터(공기정화장치)를 공기 순환율이 높은 제품으로 바꾸고 배기가스를 내뿜는 머플러를 출고(3~5cm) 때보다 크고 효율이 높은 것으로 바꿔 5~10마력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외형 튜닝은 큰 휠을 달고 질 좋은 스포츠 타이어, 차체를 낮춰주는 서스펜션, 기존 범퍼 등을 바꿔 전혀 다른 모양의 차를 만드는 것이다. 범퍼를 바꾸는 에어로파츠 튜닝은 고속에서 차량이 출렁이는 현상을 줄여준다고 한다.

튜닝에 관한 정보 교류는 자동차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자동차 동호회 카페는 7000곳이 넘는다. 회원 수가 20만 명이 넘는 카페도 있다. 충북의 강동대학교 등 전국 7~8개 대학에 자동차 튜닝 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다. 르노삼성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젊은 튜닝 매니어들을 잡기 위해 출고 차량에 부착 가능한 에어로파츠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신서비스업 발굴 분야에 자동차 튜닝을 포함시켜 체계적인 정책 지원을 하기로 했다.

튜닝 용품은 값비싼 수입품이 대부분이다. 상당수가 명품 샤넬과 루이뷔통 값을 뛰어넘는 고가다. 경기도 안산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37)씨의 흰색 렉서스 IS250에는 일본 RAY사에서 만든 VOLK TE37 휠이 달려 있는데 개당 가격이 120만원을 넘는다. 그는 “얼마 전까지 탄 BMW Z4에는 개당 150만원짜리 독일제 BBS휠을, 그전에는 미국제 HRE휠을 사용했는데 고가의 휠은 가볍고 디자인이 멋있다”고 말했다. 우렁찬 배기음을 내는 머플러는 수제품(200만원)이라고 한다. 이씨의 튜닝 총액은 1300만원이다.

튜닝 타이어는 독일 던롭사의 SP맥스GP와 독일 브리지스톤사의 포텐자 S001 등이 인기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46만~60만원쯤 한다. 머플러는 소리 크기 조절이 가능한 이탈리아 투비사 제품이 인기다. BMW M시리즈용은 400만원, 페라리용은 700만원쯤 한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머플러도 있다. 터빈은 독일 가레트나 KKK 등이 유명하지만 부품값만 160만원 이상 한다.

 비싸기로 따지면 카오디오 튜닝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중랑구 카오디오숍의 직원은 “국산 소형차 값을 훌쩍 뛰어넘는 일본 비위드사의 선라이즈 스피커(세트당 300여만원) 두 세트를 달고 나카미치사에서 만든 CD플레이어를 다는 젊은 카오디오 튜닝 매니어들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튜닝은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구조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불법이다. 안전기준 위반 자동차는 원상복구 명령과 함께 형사고발 대상이다.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어 매니어들은 대체로 합법적 절차를 준수한다. 2010년 12만여 대, 2011년 14만여 대의 차량이 구조변경 승인을 받았다. 울산 자동차검사소의 직원은 “구조 변경 신청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소음·배기가스 기준을 초과해 불합격되는 차량도 있다”고 말했다.

고액을 들인 튜닝이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명품 백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실제로 튜닝을 하는 사람들은 “나만의 개성이 드러나게 외관을 꾸미고 성능을 높이는 데 따른 만족감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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