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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성장통과 더불어 성장하는 인간 …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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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참으로 억울하다. 힘들다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믿는 사람이 없다. 늘 고민이나 걱정거리 없이 사는 여자 같단다. 속이 없다는 말인지 비었다는 말인지. 내게 고민이 있다는 건 개그콘서트 ‘네 가지’ 코너의 김준현이 식욕 없다는 것만큼이나 믿기질 않는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힘들다. 그런데 힘든 일은 왜 깡패들같이 몰려다니는 걸까. 시작은 개인문제였다. 그러더니 집안 문제까지 겹치고 또 독감에다 지금은 팔목까지 시큰거려 좋아하는 ‘북 치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하지만 걱정은 안 한다. 이런 힘든 시간들도 멈추지 않고 째깍째깍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 벌써 깨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간과 함께 ‘다 지나가더라’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면 어김없이 선물이 따라온다는 사실까지 안다. 힘이 들면 들수록 더 큰 선물이 오더라. 그러니 심지어는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이 고통 견디고 나면 무슨 선물이 오려나’ 은근 기대까지. 그리 보니 고민·걱정 없겠다는 남들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고민, 걱정, 시련. 힘든 일들도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 다르다. 걱정해서 풀릴 것도 있고 걱정 상관없이 시간 가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있다. 저절로 풀릴 문제들이야 괜한 시간 낭비하며 신경 쓸 필요 전혀 없고, 나머진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기다리면 ‘고민 해결 끝’. 어차피 다 지나갈 것들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시작하는 일들이 있었다.

 피아노 배우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때려치우는 다른 취미들과 달리, 유독 피아노는 미련이 남는지 레슨을 열 번도 더 시작하고 열 번도 더 집어치웠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포기하는 곳이 늘 같은 곳이다. 체르니 피아노 연습곡 40번 중 8번이던가. 여러 차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가 매번 같은 곳에만 가면 포기하게 된다.

 헬스도 마찬가지다. 넘기 힘든 장벽이 있다. 살을 찢는 고통 너머 초콜릿도, 간고등어 복근도 있거늘, 늘 목전에서 포기하고 말았었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운동의 신’이 강림하셨는지 몸이 스프링같이 튀어 오르며 미친 듯이 운동을 했고, 곧바로 최상의 몸 컨디션을 얻었다. 그때 난 고통 너머 준비된 큰 선물을 봤다. 고통과 선물이 짝꿍이란 것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믿는다. 오늘의 고통도 선물을 받기 위한 준비과정이란 것을.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점점 늙어가는 거라 했다. 죽을 때까지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니 ‘성장통’의 고통도 함께할 것이다. 누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 하더라. 하지만 난, ‘아프니까 살아있는 거다’라 말하련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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