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하우스푸어 해결책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언식
(주)DSD삼호 회장

주택 미분양과 하우스푸어(근로빈곤층) 문제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 되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이 스스로 풀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데 이웃 나라 일본의 제도를 참고해봄 직하다. 일본에선 부모가 자녀에게 주택을 구입해주면 상속세, 증여세 및 기타 세금을 면제해준다.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부동산이 투기 대상이 되고 자산 증식의 1순위인 상황이라면 상속세나 증여세 면제는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현재 주택은 재산 증식 1순위가 아니라 패가망신의 1순위라 해도 좋을 만큼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 주택경기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 됐고 전·월세 대란은 서민의 고통을 끊임없이 가중시키고 있다. ‘하우스 푸어’가 폭발 직전으로 가는 상황에서, 주택 구입을 과거처럼 투기 대상으로 죄악시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은 침체를 거듭했고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장의 부동자금이 70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부분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돈을 가진 사람들을 마녀사냥식으로 공격하려는 태도가 남아 있어 투자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시장의 파국을 막기 위해선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정책 담당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옛날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정책 담당자들은 앞장서서 제도를 개선할 용기를 나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은 대출 기간 연장이나 상환 기간 유예 등의 임시방편적인 미봉책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지금 벌어지는 ‘하우스푸어’의 근본 원인은 빚을 얻어 주택을 구입했는데 그게 팔리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주택 거래가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집을 팔아서 부채를 상환하고 재활의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그게 서민을 살리는 길이요, 절망에 빠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는 한시적으로나마 주택 거래 부양정책을 썼다. 그걸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반 투자자나 돈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여러 채 사서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고 무주택자들에게 5~10년 동안 싸게(예를 들면 전세는 구입 가격의 40% 이하 임대, 월세는 연리 2.0% 이하 임대) 빌려줄 경우 그 주택에 대해선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면제해주고 취득세와 다주택 양도세도 감면해줄 필요가 있다. 또 임대 기간 중 상속자가 사망하고 피상속자가 상속을 받아도 임대 기간을 채우면 세제 혜택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단 시행 기간은 1년 정도 한시적으로 적용해 시중의 부동자금과 지하자금을 양성화시키는 것이다.

  시중 부동자금 700조원 가운데 10%만 주택 구입에 투자되면 매매대금 3억5000만원을 기준으로 수도권 30평형대 약 20만 가구의 하우스푸어 또는 미분양주택이 해소된다. 그러면 전세 또는 월세의 공급량도 많아져 수도권 전세대란을 해소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거래 활성화에 따라 취득세 등이 증가해 지방 재정도 숨통을 틔우게 될 것이다. 이런 정책을 쓰면 일부 부유층이 부동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 있다. 바로 과도한 부채로 고통을 받는 서민과 중산층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김언식 (주)DSD삼호 회장